동물들의 사랑과 슬픔 그리고 연민에 대한 이야기
<동물들의 사생활과…>이라는 책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동물들의 생태에 관한 책이다. 자신이 직접 경험한 사례나 다른 과학자들의 연구 결과를 소개하면서 동물도 인간과 비슷한 감정 - 모성애, 고통, 두려움 등을 느낀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한다.
흔히 사람들은 동물이 보여주는 모성애는 종족보존을 위해 생물학적으로 장착된 기계적, 자동적 본능의 발현이라고 생각한다. 반면 인간의 모성애는 본능을 넘어선 의식적인 행위로 동물의 본능적 행위와는 차원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그 증거로 인간의 모성애는 동물과 다르게 ‘입양’이라는 과정을 통해 의식적으로 길러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들곤 한다. 그러나 저자는 다람쥐도 드물긴 하지만 가까운 친척의 새끼들을 입양하는 것이 관찰된 사례가 있다고 한다. 또 개나 돼지가 자신의 새끼가 아닌 어린 동물들을 자식으로 받아들이고, 심지어 종이 다른 동물의 새끼에게 수유를 하는 사례, 새끼를 잃은 까마귀가 어미를 잃은 집고양이 새끼를 품 안으로 받아들여 벌레를 잡아 먹이며 5년 동안이나 돌본 사례들을 제시하며 입양이 인간에게서만 일어나는 현상이 아니라고 반박한다.
그러므로 동물들의 모성애를 출산 직후 새끼를 핥아주고 목소리를 교환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자동적이고 생물학적으로 각인된 본능적 연대로 한정짓고 인간의 모성애 보다 차원이 낮은 것으로 격하시킬 근거가 부족하다고 한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저자는 보다 중요한 것은 동물들이 의식적으로 모성애를 발전시킬 수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며, 동물들이 보여주는 모성애는 본능적인 것 그 자체로도 충분히 감동적이고 놀라운 일이라고 한다.
저자는 인간의 대부분의 행위도, 특히 감정과 관련된 행위들은 ‘생각’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 거의 본능에 따라 행해진다고 본다. 그 근거로 라이프치히 맥스 플랑크 연구소에서 발행한 연구 리포트를 인용한다. (2008 발행. 이 연구결과는 인간의 의식과 행위의 관계를 연구하는 많은 학자들이 자주 인용하는 실험이다.) 이 실험은 MRI 촬영을 통해 인간의 두뇌의 결정이 실험 대상자가 자신의 행동을 결정하기 전 최장 7초 이전에 이미 이뤄지는 것을 밝혀낸다. 다시 말하면 인간의 행동은 두뇌의 ‘무의식적 부분’ 즉 의식과 관련되지 않은 부분에 의해 촉발되며, 두뇌의 ‘의식적 부분’은 몇 초 후 그 행동에 대한 이성적 설명에 관여한다는 주장이다. 인간의 소위 ‘자유의지’라는 개념이 사실은 자신의 행동에 대한 체면치레를 위한 설명이나 자신의 약한 자아를 구하기 위한 노력에서 나온 것이라는 것이다.
또 빅토리아 브레이스웨이트Victoria Braithwaite 교수는 물고기의 주둥이 근처에서 스무 개의 통각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 통각들을 자극할 때 사람과 마찬가지로 물고기의 후뇌Hindbrain가 반응한다는 것을 밝혀냈다. 즉 물고기도 낚시 바늘에 걸리면 고통을 느낀다는 것이다.
인간은 두려움을 느끼면 아몬드 모양의 편도체에서 반응한다. 마뉴엘 포르타벨라 가르시아라는 교수가 물고기 뇌에서 비슷한 장소를 찾아냈다. 텔렌스팔론Telencephalon이라고 불리는 이 부분이 인간의 두려움에 반응하는 편도체와 비슷한 역할을 하고, 이 부위를 제거한 물고기가 더 이상 두려움에 따른 행동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실험으로 입증했다. 이 뇌는 물고기와 육지의 모든 척추동물이 진화의 가지에서 갈라져 나오기 전부터 이미 공통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부위이다. 물고기와 모든 척추동물이 두려움에 반응하는 뇌를 갖고 있다.
과학자들은 심지어 물고기가 옥시토신을 갖고 있다는 것도 밝혀냈다. 새끼와 어미에게 사랑과 기쁨을 강화시키는 이 호르몬이 물고기에게도 존재한다. 물고기도 사랑과 기쁨을 느끼는 것일까? 그것을 당장 증명할 수는 없지만 물고기들도 그럴 거라고 가정하는 것이 그들이 겪을 불필요한 고통으로부터 그들을 보호하는 한 방법이 되지 않겠는가라고 묻는다.
파리들도 자신들의 감각기관을 통해 들어오는 수많은 정보 중에 자신들에게 필요한 정보 즉 먹이라든가 위협에 대한 정보를 걸러내는 과정을 가지고 있다. 인간이 수많은 정보 중에서 자신에게 필요한 정보를 걸러내고 선택하는 ‘의식’의 과정과 비슷하지 않은가?
인간의 ‘의식’과 ‘사고’에 관여하는 네오코르텍스는 우리 두뇌의 가장 바깥 부분에 위치해 있는데, 인간 두뇌 진화의 가장 최근 단계에 발전했다. 다른 동물에 비해 인간이 이 뇌세포를 훨씬 많이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여태까지 사람들이 주장한 것처럼 이 부분이 없거나 적은 동물이 고통을 덜 느낀다고 볼 수 있는 근거는 아니다. ‘고통’은 의식하는 것이 아니라 느끼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람쥐가 먹이를 저장할 때 다른 다람쥐를 속이기 위해 거짓 구덩이를 파고 묻는 시늉을 한다거나 심지어 단세포 생물인 균류도 먹이를 찾아다닐 때 이미 조사를 한 지역을 기억하여 그 주변을 제외하는 식으로 보다 효과적으로 먹이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이 관찰 결과 밝혀졌다고 한다. 어치들은 먹이를 숨겨둔 수천 개의 저장고를 다 기억해 단 한 번의 부리질로 찾아 먹는다. 자신에게 꾸준히 먹이를 주는 소녀를 위해 작은 선물들을 물어 오는 까마귀의 사례, 또 당장의 배고픔을 참고 미래를 위해 어떤 먹이를 저장하고 어떤 먹이를 먼저 먹을 것인지를 판단하는 능력을 가진 까마귀, 썰매 타기를 즐기는 까마귀 사례도 있다.
또 많은 동물들이 자신들 만의 언어로 다양한 의사소통을 한다.
고든 갤럽이라는 사람에 의해 행해진 거울 실험 즉 거울에 비친 모습이 자신임을 인식하는 시험에서 어떤 동물들이 합격했는지 아는가? 침팬지, 돌고래, 코끼리들이 모두 첫 시험을 통과했다. 까마귀와 까치도 거울에 비친 영상이 자신임을 인식했다고 한다. 인간의 아기는 18개월이 넘어야 성공할 수 있었다. 돼지도 시험을 통과했지만 돼지에게는 다른 동물에 대한 것만큼의 주의가 기울여지지 않았다. 저자는 그 이유가 우리가 돼지를 먹기 때문에 의식적으로 이를 인정하고 싶지 않은 마음 탓이라고 보았다. 돼지의 영리함을 보여주는 다른 여러 실험도 소개하고 있다.
부끄러움과 후회, 공평함, 이타심, 공감과 동정심을 느끼고 표현하는 동물들의 사례도 있다.
그러므로 이들이 느끼는 감정들을 인간의 것과 질적으로 다른 것이라고 평가절하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저자의 일관된 입장이다. 인간이 생존하기 위해 하는 모든 행동과 비슷한 행동을 동물들에게서 발견할 수 있으며, 그 행동의 동기가 되는 본능과 감정도 비슷하게 발견할 수 있다.
인간도 자연의 일부이며 생존을 위해 육식을 하기도 한다.
그 필요성을 부인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동물이 인간과 마찬가지로 고통과 공포와 사랑을 느끼는 존재라는 것을 이해한다면 그들을 대하는 인간의 태도는 달라져야 한다. 동물들이 사는 동안 최소한 존엄한 생명체로 인정받을 수 있어야 하고 건강한 환경에서 가능한 한 자유롭게 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공장형 축사를 폐지해야 하고 그들의 삶의 보금자리를 무자비하게 침범해서 생존의 위기에 빠트리는 일을 삼가야 한다. 음식도 필요한 만큼만 먹으라고 권한다.
대단히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피터 볼레벤의 충고이다.
이 책에서 소개되는 많은 실험들이 동물들에게 큰 스트레스나 고통을 주는 형태의 것은 아니지만, 개중에는 분명히 고통을 경험하게 하는 실험들도 있었다. 이 실험들이 동물도 인간과 비슷한 느낌과 나름의 사고체계를 갖춘 존재라는 것을 인식하는 과정이었다면 이제 이들에게 고통과 스트레스를 안겨주는 실험은 재고해 봐야 하지 않을까? 특히 의학분야의 많은 발전이 이들 동물들의 희생 위에서 이루어지고 있는데 대해 피터 볼레벤은 무슨 의견을 갖고 있을까? 그는 합리주의자이기 때문에 동물실험을 전적으로 반대하지는 못할 것 같다.
우리 모두 혜택을 보고 있는 이 ‘필요악’을 최대한 줄이고 보상하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