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주의자/소년이 온다/작별하지 않는다
한강의 작품을 읽는 것은 힘들고 고통스럽다.
부정맥이 올만큼 가슴이 조이고 긴장된다.
그래도 중간에 중단할 수 없다.
끝을 봐야 한다.
그 끝에 무엇이 있는지 궁금하고 절박해서 그렇다.
읽는 사람이 이럴진대, 이것을 쓴 사람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어느 인터뷰에서 한강은 글을 쓰는 것이 치유를 위해서가 아니라고 했다.
글을 쓰는 것은 고통이고 오히려 고통을 강화시킨다고 했다.
더 강해진 고통의 힘으로 글쓰기를 밀고 나가 끝에 도달하면 뭔가 대답을 얻을 수 있을까.
그가 얻은 대답은 왜 <작별하지 않는다>가 되었을까.
경하(작별하지 않는다)는 더 이상 이 세상에서 살아야 할 이유가 없어져서, 혹은
자신이 쓴 소설 속의 인물들이 겪은 고통들이 너무나 절실해서
잠을 자지도 제대로 먹지도 못하여 스스로 삶을 정리하려고 몇 번이나 ‘작별을 고하는’ 편지를 쓰고 다시 쓴 인물이다.
유리처럼 투명하고 약한 영혼을 가져서 다른 생명에 대한 인간의 폭력을 참을 수가 없었던 영혜(채식주의자)는 마침내 자신이 그 인간의 일원이 되기를 거부하고 꽃과 나무가 되고자 한다.
방금까지 손잡고 함께 있던 친구 정대가 총탄에 쓰러지고 엉겁결에 손을 놓친 열다섯 살 동호(소년이 온다)는 친구의 몸을 찾기 위해 시민회관에서 시신 관리하는 일을 자원한다. 그곳에서 함께 생활한 형과 누나들 곁을 떠날 수 없어서 마지막까지 시민회관에 남았다가 아무런 저항 한 번 하지 못하고 계엄군의 총탄에 쓰러진다.
한강의 작품에 나오는 인간은 약하고 부서지기 쉽고 외롭다.
한강의 작품에 나오는 인간은 잔인하고 폭력적이고 다른 인간의 몸과 마음을 망가뜨리는 데 망설임이 없다.
인간의 원초적 생명력과 자유를 갈망하는 예술가의 혼으로 사회적 윤리를 깨뜨리는 행위까지 이르지만 결국 마지막 순간에 겁쟁이가 되어 버리기도 한다.
약하고 부서지기 쉬운 인간과 잔인하고 폭력적이며 원초적이고 비겁한 인간이 만들어 낸 사회는 우리가 매일 직면하고 살아내야 하는 세상이다.
그 세상을 사람들은 각자의 방식대로 살아가는 수밖에 없다.
동호는 십자가 모양으로 차곡차곡 쌓인 시체들의 맨 아래에서 혼으로 빠져나와 정대의 영혼을 만날 수 있기를 기다린다.
정대의 영혼은 누나 정미의 영혼을 찾으려 기다리고 친구 동호의 죽음을 느낀다.
서서히 몸에서 자유로워진 영혼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스며들어 하나가 된다.
치욕스러운 고문을 당하고 ‘아직도 날마다 싸우고 있다. 내가 아직 인간이라는 사실과…’라고 말했던 진수는 결국 스스로의 목숨을 끊어 그 고통스러운 싸움을 중단한다.
여자로서 고문대 위에서 당해야 했던 고통을 수십 년 동안 누구에게도 입 밖에 내어 말할 수 없었던 한 여성은 사회적 관계를 최소화할 수 있는 환경운동 단체 실무자로 일하면서 말없이 혼자만의 삶을 살아낸다.
영혜의 언니 인혜는 생각한다. 삶에 지치고 피곤한 인혜는 가족 모두에게 치욕이 되어버린 동생, '이제는 값싼 추문이 되어버린, 그녀를 둘러 싼 모든 사람의 삶이 모래산 처럼 허물어버린 그 사건'을 떠올리며 생각한다.
...어린 시절 영혜에 대한 아버지의 폭력을 막아냈더라면, 인상이 맘에 들지 않았던 남자와의 결혼을 말렸더라면, 영혜의 입에 탕수육을 억지로 구겨 넣던 가족들의 폭력을 막았더라면… 문제가 되는 상황과 항상 적당히 거리를 두며 나를 보존하는 비겁한 선택을 하지 않았더라면… 영혜가 지금 이렇게 되지 않지 않았을까.
그래서 인혜는 가족 모두가 버린 영혜를 마지막 순간까지 돌본다.
그 섬에서 집단으로 죽임을 당하거나 끌려가 행방을 찾을 수 없고 시체도 찾지 못한 수천 명의 사람들.
인선은 반 정신이 나간 사람으로 여겼던 어머니가 그때 끌려가 돌아오지 않는 오빠를 찾기 위해 평생 동안 대구와 서울을 오가며 자료를 모으고 사람들을 만나고 다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바다에 휩쓸려간 사람들, 굴 속에 매장된 사람들.
인선은 그들을 기억하는 검은 나무 기둥들을 세우는 일을 시작한다. 사람의 몸통을 닮은 나무들을.
원래는 경하가 자신이 소설로 쓰고자 조사했던 사람들의 영혼이 실린 몸을 찾아주고자 기획하고 인선에게 함께 하자 제안했지만 경하가 자신의 삶에 <작별을 고하자> 생각하며 취소했던 프로젝트이다.
경하가 <작별하지 않는다>로 이름 붙인 그 프로젝트는 죽은 지 오래된 사람들을 잊지 못하고 살아온 인선의 부모님, 그리고 동호의 혼과 정대의 혼, 진수의 혼, 정미의 혼, 그 밖에 수많은 사람들…
우리의 나약함과 순수함, 잔인성과 폭력성에 의해 스러진 사람들에 대한 남은 사람들의 기억을 땅에 새겨 박는 일이다. 바닷물에 휩쓸려 가지 않고 흙더미에 파묻히지 않는 검고 강한 사람을 닮은 통나무들.
경하와 인선은 그 검은 나무 둥치에 한없이 가볍고 따뜻한 하얀 제주의 눈이 덮이는 꿈을 꾸었다.
한강은 오랫동안 천착했던 인간의 약함과 폭력성에 반한 희망을 “광주”에서 찾았다고 했다.
잔인한 폭력에 의해 부서지고 망가진 것 같았던 사람들이 영혼으로 하나가 되고, 그들을 기억하는 사람들과 하나가 되어
다시 인간 존재와 역사에 희망을 볼 수 있게 만들었다.
세월호의 아이들, 이태원의 젊은이들, 그 밖에 하루에도 몇 사람씩 억울하게 죽어가는 건설 현장과 공장의 노동자들…
남은 우리가 그들과 <작별하지 않으면> 그들도 우리 속에 함께 살아갈 것이다.
그러니까 인간은 근본적으로 잔인한 존재인 것입니까? 우리들은 단지 보편적인 경험을 한 것 뿐입니까? 우리는 존엄하다는 착각 속에 살고 있을 뿐, 언제든 아무 것도 아닌 것, 벌레, 짐승, 고름과 진물의 덩어리로 변할 수 있는 것입니까? 굴욕당하고 훼손되고 살해되는 것, 그것이 역사 속에서 증명된 인간의 본질입니까?
유리는 투명하고 깨지기 쉽지. 그게 유리의 본성이지. 그러니까 유리로 만든 물건은 조심해서 다뤄야 하는 거지. 금이 가거나 부서지면 못쓰게 되니까. 버려야 하니까.
예전에 우린 깨지지 않은 유리를 갖고 있었지. 그게 유린지 뭔지 확인도 안해본, 단단하고 투명한 진짜였지. 그러니까 우린, 부서지면서 우리가 영혼을 갖고 있었단 걸 보여준 거지. 진짜 유리로 만든 인간이었단 걸 증명한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