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경제학자들이 취해야 할 7가지 사고방식
앞서 나의 글 <스위트 그라스를 땋으며>에서 소개한 로빈 W. 키머러는 그 이의 책 <자연은 계산하지 않는다 Serviceberry>에서 ‘선물의 경제’ 혹은 ‘상호성Reciprocity의 경제’라는 인디언 원주민의 전통적인 경제활동 방식을 현대 인류가 처한 지구적 차원의 생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으로 제기한다. 오늘 소개하는 책은 같은 문제의식 위에서 좀 더 분석적이고 경제학적인 방법을 동원해 21세기 인류가 취해야 할 경제활동, 삶의 방식에 대한 총체적 지향점을 제안한다.
<도넛 경제학>이라는 재미있는 제목이 붙은 이 책의 저자는 케이트 레이워스Kate Raworth라는 영국의 경제학자이다. 옥스퍼드 대, 케임브리지 대학 등에서 연구원으로 일하고 유엔과 옥스팜 등에서 저개발 국가를 지원하는 활동을 하기도 했다. <도넛 경제학>에는 <21세기 경제학자처럼 생각하는 일곱 가지 방법>이라는 설명이 붙어 있다. 이 설명이 보여주는 것처럼 도넛 경제학은 전통적인 경제학 이론을 강의하거나 연구하는 현재의 대학 교수들, 경제학도들에게 21세기 인류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들을 해결하는데 그런 이론들이 과연 마땅한 것인지 질문을 던지고 당면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완전히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전환한 경제학이 필요하다고 설득한다.
즉 전통의 경제학이 기업이나 국가의 성장률 제고에 매달려 온 결과 인류의 생존의 기초인 지구 생태계의 변화가 미래의 생존을 위협하는 심각한 상태에 도달했다. 따라서 경제학은 더 이상 ‘끝없는 성장’이라는 목적 자체가 의문시되고 사실상 성취 불가능한 목표가 아니라 ‘인간다운 생존’이라는 현실적으로 긴급한 목표로 변경해야 한다고 한다. 그리고 이러한 목표의 수정을 확실하게 보여주는 도표로 ‘도넛’을 제시한다. 전통적 경제학이 GDP 성장곡선으로 상징된다면 새로운 경제학의 틀은 도넛 모양으로 상징된다
도넛 경제학은 두 개의 동심원으로 표현된다. 안쪽의 작은 원은 인간의 복지를 보장하는 사회적 기초의 기준선이다. 어떤 인간도 이 기준선 아래로 떨어져서는 안 된다. 이 기준선을 구성하는 요소는 물, 음식, 건강, 교육, 직업과 수입, 정치적 목소리, 평화와 정의, 사회적 평등, 성평등, 집, 네트워크, 에너지 등 12가지로 구성되어 있다.
두 번째 원은 지구의 환경생태계를 보전할 수 있는 한계선이다. 기후변화, 해양의 산성화, 화학적 오염, 질소와 인의 축적, 땅의 개발, 생물 다양성의 상실, 대기 오염, 오존층의 감소 등 9가지 요소로 구성된다. 이 요소들이 기준 천정을 넘어가면 심각한 지구 생태계의 파괴를 가져오게 된다.
인류가 안전하고 올바르게 살아갈 수 있는 공간은 바로 이 두 선이 만들어 낸 도넛 형태의 공간이다.
이 도넛을 구성하는 각 요소들의 현재 상황을 도표로 표시함으로써 인류가 안전한 생존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즉 도넛의 안쪽에 위치하기 위해 씨름해야 할 문제들의 종류와 강도를 한눈에 알 수 있다.
그림의 안쪽 기준선(사회적 기초선) 밑으로 떨어진 어두운 기둥이 현재 기준선 이하의 삶을 살고 있는 지구상 인구의 비율을 나타낸다. 바깥쪽 기준선(생태적 천정선)을 뚫고 나온 어두운 기둥들은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는 생태적 환경의 위험도를 표현한다.
이러한 두 경계선 사이, 도넛 안에서만 인류는 인간적이고 안전한 삶을 미래에도 이어갈 수 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유례없는 발전, 경제적 성장을 이룩했다는 21세기에도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이 사회적 기준선 밖에서 살고 있다. 또한 많은 과학자들이 인류의 끝 모르는 성장 추구에 의해 지구는 더 이상 생존이 가능하지 않은 환경으로 넘어갈 변곡점에 곧 도달할 것이라고 우려한다. 따라서 인류는 지난 60년 간의 성장 드라이브를 대신해, 진보의 방향과 모양을 크게 바꿔야 한다.
만약 21세기 인류의 목표가 도넛 속에 자리 잡는 것이라면 어떤 경제적 마인드-마음가짐-가 우리로 하여금 그곳에 도달하게 하는 최선의 것이 될 수 있을까? 저자는 새로운 마인드와 경제적 틀은 다양한 그룹의 사상들- 복합적, 생태학적, 여성주의적, 제도적, 행동주의적 경제학- 위에 그려져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경제학의 기본적인 사상들을 버리고 새로 배워야 한다고 말한다.
21세기 새로운 경제학의 기본 사상을 이루기 위해 저자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7가지의 개념으로 제안한다.
가장 중요한 개념은 프리드만 같은 신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이 주장한 자유시장 만능주의의 오류와 기만성을 인정하는 것이다. 시장의 자유를 절대시 하고 가정경제를 무시하며 국가와 공동체 혹은 공유 경제를 무시하거나 약화시키려는 태도는 21세기에는 맞지 않는다고 한다. 무엇보다 시장경제의 보이지 않는 손에 대한 신화는 현실에서 깨어진 지 오래며, 세계 자유무역의 강조와 국가의 간섭 최소화라는 이념도 오히려 세계 최강국인 미국에 의해 철저히 폐기되고 있는 것이 오늘날 세계가 직면하고 있는 현실이다.
또한 저자는 시장뿐만 아니라 가정, 국가, 공유공동체가 모두 경제의 주체이며 이들의 역할이 서로 체계적으로 얽혀 있는 거미줄과 같은 더 넓은 구조로 경제를 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러한 개념을 다음의 두 그림으로 잘 이해할 수 있다.
위 첫 번째 그림은 전통적인 경제학이 경제 시스템을 이해하는 방식을 표현한 것이다. 가정과 기업이라는 두 주요 경제 주체가 있고 은행과 정부, 무역 시스템에서 각각 투입과 유출이 단선적으로 연결된다.
두 번째 그림은 21세기 경제학적 이해에 맞는 경제 시스템을 표현하고 있다. 경제는 사회 안에 내재해 있으며 사회는 살아있는 자연 속에 존재한다. 동시에 사람들의 필요와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이 존재한다는 것을 함께 인식하게 해 준다.
또 하나의 중요한 개념은 인간에 대한 인식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전통 경제학에서 인간은 합리적인 경제적 존재이다. 합리적인 경제인(자기 이해에 충실한, 고립된, 계산적인, 취향이 고정되어 있고 자연을 지배하는 존재라는 초상)이라는 전통적 이미지를 벗겨내야 한다.
인간은 이 보다 훨씬 풍부한 본성을 가지고 있다. 사회적이며 독립적이고, 가치에 있어서 계산적이기보다 서로 비슷해지는 경향성을 갖고 있고, 취향은 유동적이며 살고 있는 세계에 의존적인 존재라는 새로운 초상을 그려야 한다. 이런 형태의 인간 본성을 양성하는 것이 인류가 도넛의 안전하고 올바른 공간에 안착하는 데 훨씬 큰 기회를 제공해 줄 수 있다. 자기 이익 중심적인self-interested 인간에서 사회적으로 주고받는 socially reciprocating 인간상으로 전환하는 것이 도넛의 위. 아래 경계선을 벗어나지 않는 사회를 만드는데 필수적이다.
호모 사피엔스는 결국 지구상에서 가장 협동적인 종이며 자신의 친족이 아닌 존재들과도 함께 잘 살아가는 것에 관한 한 개미나 하이에나, 벌거숭이 두더지들을 뛰어넘는 존재임이 역사적으로 증명되지 않았는가..
이 외에 중요한 것으로 성장 대신에 분배를 더 고민해야 한다는 것, 회복과 재생을 위한 순환적 경제를 디자인할 것을 제안한다.
여태까지의 전통적 경제학은 경제적 성장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오로지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노력해 왔다. 그러나 자연에서 영원한 성장이란 불가능하다. 이미 고소득 국가에서부터 GDP의 성장이 얼마나 계속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성장에 중독된 우리는 그것이 정말 우리를 번영하게 만드는 것인지 의문조차 제기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가 정말 필요로 하는 것은 목적지가 불분명한 GDP의 성장이 아니라 인류가 도넛의 안전지대 안에서 함께 번영할 수 있는 실제 방안을 찾아내는 것이다.
분배의 불평등은 신자유주의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성장을 위해 일시적으로 필요한 것 혹은 필연적인 것이 아니라 경제 시스템에 대한 디자인의 실패 때문에 생겨난 것이다. 도넛의 기준선 아래로 떨어진 사람들을 안전지대로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자유시장에 맡겨놓을 게 아니라 국가와 공동체가 함께 참여해서 새로운 경제 시스템을 디자인해야 한다.
예를 들어 세계적 부의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970년 UN은 고소득 국가들이 연소득의 0.7%를 늦어도 1980년까지 저소득국가에 ODA(Overseas Development Assistance)형태로 지원하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30년이 더 지난 2013년 지원 금액은 겨우 0.3%에 머물렀다. ODA를 대신해 부의 분배에 기여하는 것은 이주 노동력이 고향에 보내는 수입의 일부이다. 이들 노동자들이 해외에서 보내오는 돈이 네팔, 몰도바 같은 국가 GDP의 25%를 차지한다. 이처럼 요즘은 이주 노동이 지구적 수입의 불평등을 감소시킬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의 하나로 부상하고 있다. 그러나 많은 선진국들이 ODA에 대한 부정적 평가 혹은 핑계(원조를 받는 많은 나라에서 부패한 지도자들에 의해 부당하게 착복되고 있어서 원래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인데 최근 한국이 캄보디아에 제공한 ODA가 김건희 씨 가족과 측근들의 치부를 위한 수단으로 의심되고 있다는 보도를 떠 올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를 대고 적극적으로 국가적 원조에 나서지 않는데, 그렇다면 원조를 가난한 나라의 국민 모두에게 기본수입 형태로 직접 배분하는 것은 어떤가? 현재의 발전된 모바일 뱅킹과 모바일 화폐를 이용하면 아주 낙후된 지역에서도 빠르고 효과적으로 시행할 수 있다.(케냐의 M-PESA 모바일 머니 서비스는 오지에서의 모바일 뱅킹을 가능케 한 사례)
현금으로 주는 기본수입이 사람들을 게으르게 만들 수 있다는 가정들은 여러 나라의 사례를 통해 잘못된 것으로 드러났으며 믿는 구석이 있는 사람들이 더욱 열심히 일하게 만드는 동력이 되었다고 평가한다.(케냐의 사례) 다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런 수입이 공공의 서비스를 대체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시장은 국가와 공동체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보충적으로 기능할 때 불평등과 가난 해결을 위해 가장 훌륭하게 그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회복과 순환을 위한 경제 시스템-재생경제 시스템을 디자인하기 위해서는 독일 등 몇몇 국가가 시행하고 있는 여러 방법들을 벤치마킹할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이 탄소세, 에너지 할당제, 물이나 전기 등 자연 자원 소비에 대한 차등 요금제 등이 있다. 그러나 더 적극적으로 필요한 정책은 자연자원을 소비 제로를 넘어서 재생산할 수 있는 기업 모델을 개발하고 적극 활동하도록 돕는 것이다.
이 책에는 이러한 새로운 경제 시스템을 기획하기 위해 참고할 만한 다양한 나라의 사례들이 풍부하게 제시되어 있다. 그중에는 우리에게 익숙한 지역화폐의 고안과 사용이 지역 경제의 순환과 경제적으로 어려운 소상공인들을 도운 사례도 있다. 차이점이 있다면 한국은 이 지역화폐를 중앙정부 차원에서 추진했다는 것이다.
또한 기술의 발전을 거대 IT 기업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공유의 경제를 발전시키는 데 사용할 것을 제안한다. 블록체인 기술로 일정 지역 내 서로의 시간과 노동을 자유롭게 주고받는 방식을 개발하는 것이 실제로 이뤄지고 있는 사례가 있다. 더욱 근본적인 것은 오픈 소스 플랫폼을 구축해서 지식과 기술의 공유를 전 세계적으로 가능케 하는 것이다. 이것이야 말로 21세기 부의 재분배의 가장 혁신적인 방법 중의 하나가 될 것이라고 한다. 뿐만 아니라 첨단 기술을 오픈 소스화 함으로써 새로운 재생경제 시스템을 시도하고자 하는 공동체들을 크게 뒷받침해 줄 수 있다.
이 책에는 전통적인 경제학 저서에서는 접할 수 없는 이러한 새로운 경제활동의 사례들이 많다. 단지 이상주의적 제안이 아니라 실제로 세계 곳곳에서 행해지고 있는 사례들을 읽다 보면 인류에게 작으나마 희망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창조적 경제활동을 가능케 한 문제의식과 사상적 기초일 것이다. 21세기 경제학을 공부하는 사람, 보다 인간다운 삶, 지구의 생명 순환적인 경제체제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 읽어보고 영감을 받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