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벌이의 위대함

by 브니엘

어렸을 적 나는 초초초 내성적인 아이였다. 국어 시간에 책이라도 읽을라치면 가슴이 두근거리다 못해 숨이 가빠 쓰러질 것 같았고, 화를 내는 선생님의 눈치를 보느라 화장실 한번 다녀오겠다는 말을 못 해서 무려 4학년이라는 꽤 큰 나이에 교실에서 그야말로 오줌을 싼 적이 있었다. 사춘기가 가까워오는 큰 여자아이가 상처 받을까 봐 선생님은 급히 나를 귀가 조치하셨었다. 그 큰 일(?)을 겪고 나서도 나는 크게 달라지지 않아 손들고 나의 의사를 표현하지 못했다. 학창 시절 내내 성적이 늘 상위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시선과 관심에 알레르기가 있다 보니 반장 한번 해보지 못했다.

남 앞에 서는 것, 주목받는 것을 싫어하던 나의 성향은 나이를 먹어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대학교 수업에서 발표시간에 너무 긴장을 해서 교수님께 혼나야 했고, 직장에서 발표를 하던 어느 날 '손이 심하게 떨리던데 어디 아픈 게 아니냐'는 진심 어린 우려의 목소리를 들어야 했다. 내리고자 하는 역에서 벨을 누르고 섰을 때 혹시라도 받게 될 시선이 두려워 버스를 싫어했고, 행여 운전기사님이 벨소리를 놓치고 빨리 출발해 버렸을 때 '잠시만요'라고 외쳐야 하는 상황이 우려되어 돌아가고 걸어가더라도 지하철을 타는 편을 택했다. 내가 싫어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삶의 많은 영역에서 나는 기꺼이 손해를 감수했다.


그런데.

남 앞에 서는 것이 형벌이던 그 아이의 지금 직업은 사내강사이다. 많든 적든 사람들 앞에 서고, 내가 주도적으로 이야기를 하는 것이 나의 일이다. 당연히 계획했던 바는 아니었는데 그저 세월을 따라 시간과 함께 흐르다 보니 지금 이 자리에 와 있다. 어떻게 내가 가장 몸서리치던 일이 나의 밥벌이 수단이 되었는지 이 아이러니에 나는 가끔 혼자 웃는다.


지금이야 이제 이 직업이 익숙해지고 자리를 잡아서 웃으며 말할 수 있지만, 적응하려고 애쓰던 시기에 나는 사실 많이 서러워했다. 뚜렷한 재능과 비전을 가지고 태어나 자신이 좋아하는 일의 즐거움을 누리는 사람도 많고 많은데, 나는 일터에서 매일같이 전쟁터에 홀로 선 기분이었다. 강의장에서 나를 향해 사람들의 시선들이 쏟아질 때 그대로 증발해 버리고 싶었던 적도 많았고, 머릿속이 하얘져서 무슨 말을 떠들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 강의들도 있다. 긴장한 탓에 말하는 내내 숨이 차서 건강에 이상이 있나 걱정한 적도 있었다.


평생을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피해온, 그 일을 감내하고 훈련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 일이 나의 "밥벌이"였기 때문이다. 회사는 내게 매달매달 급여를 제공했고, 나는 그 급여의 대가로 충실히 일할 의무가 있었다. 때로 이 일을 하기 싫어서 눈물을 쏟으면서도 버텨낸 이유는 오롯이 그것이었다. 자기 계발, 발전, 성장, 돌파, 확장 뭐 이따위 멋있는 이유들이 아니라.


그렇게 밥벌이를 위해 버둥거리는 동안에 나는 내가 싫어하는 그 일의 이면에 내가 무척 좋아하는 일이 함께 있음을 알게 되었다. 교육을 준비하려고 현장에서 무엇을 원하는지 파악하는 과정도 좋아했고, 자료를 찾고 내 생각을 정리해 강의안을 정리하는 과정을 좋아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예시를 찾는 것도 좋아했고 이미 만들어진 강의안을 대상을 맞춰 변주를 주는 것도 좋아했다. 강의 준비를 위해 고민의 시간들이 내게 큰 즐거움을 주었기에 어쩌면 숨이 가빠지는 그 시간들을 견뎌낼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내가 그렇게 싫어하는 '남 앞에 서는' 강의 시간에 사람들이 공감과 이해의 표정을 지을 때의 기쁨도 매우 크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람들의 반응을 보고 또다시 강의 내용을 현장에 맞춰 수정하고 고민하고 하는 사이클이 돌아갔고, 나는 그렇게 내가 평생을 피해오던 일에 익숙해져 가고 있었다.


사람 성격이 변하는 것은 아니라고, 나는 지금도 곧잘 긴장하곤 한다. 새로운 주제로 새로운 대상에게 첫 강의를 할 때면 지금도 가슴 두근거림에 머리가 어지럽다. 그러나 이제 그것을 누르고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강의를 시작하고, 그러다 보면 또 긴장이 가라앉곤 한다.(끝날 때까지 멀미가 가라앉지 않을 때도 있다.) 편안하게 버스를 타고, 버스가 혹시 그냥 출발하면 아무렇지 않게 기사님을 부를 줄도 안다. 사람들 앞에서 내 의견을 이야기하려고 하면 가슴이 두근거리긴 하지만, 필요한 이야기가 있다면 기꺼이 나의 주장을 편다. 실수할 때도 있지만 인정하고 수습할 줄도 안다.


아... 딱히 그걸 목표로 한 것은 아니었는데... 성장했다. 문득 궁금하다. 이 일이 밥벌이가 아니었어도 나는 이만큼을 올 수 있었을까...? 그저 발전해 보고자 하는 이유만으로? 이쯤 되면 뚜렷한 재능이 없어서 싫어하는 일을 직업으로 선택해야 했던 나의 조건에 감사해야 하는 것인가?

먹고사는 일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가 곱씹으며 오늘의 점심메뉴를 고민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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