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문 너머에는 방이 있다

쓰레기방에 대한 고찰

by 로움
phil-5i0GnoTTjSE-unsplash.jpg 출처 unsplash


'마음의 문을 열다'라는 표현이 있다. 이 표현은 '자신의 속마음을 드러내 보이다'는 의미로 쓰이며, 두 사람의 관계가 좋은 쪽으로 흘러갈 때나 싫어하던 대상을 좋아하게 되었을 때. 즉, 부정에서 긍정으로의 변화를 나타낼 때 쓰인다. 그와 반대로, '마음의 문을 닫다'라는 표현은 좋게 생각했던 것이 더 이상 좋지 않을 때, 단절을 원할 때. 즉 긍정에서 부정으로 변화할 때 주로 쓰인다.


문을 열고 닫음.

개방과 폐쇄의 속성을 활용한 이 표현은, 방 안에 '나'라는 주체가 있다는 걸 전제로 한다. 좋은 상대에게 문을 열어 환대하고, 싫은 상대는 문을 닫아 관계를 정리할 수 있다는 건, 방의 주인도 문고리를 잠그는 주체도 마음이 동한 '나'여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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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5월 11일(토)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는 <나 혼자 '쓰레기 집'에 산다> 편이 방영됐다.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는 범죄, 미스터리 등을 다룬다. 그래서 화를 내기도, 속상해하기도 하고 흥미로운 마음으로 영상을 시청한다. 하지만 이번 화를 보면서는 그럴 수 없었다.


쓰레기와 집. 두 단어가 어떻게 공존할 수 있을까?


의문에 대한 답을 목격했을 땐, 그 어느 때보다 마음이 무겁고 답답했다.


영상에 소개된 집들은 말 그대로 쓰레기로 뒤덮인 집이었다. 벌레들이 득실거리고 비위가 상하는 방치된 집. 이 집이 새 집일 때가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말도 안 되는 곰팡이들이 가득한 장소. 멀리에서도, 가까이에서도 비극적으로 보이기 충분했다.


나는 영상을 보며 나를 떠올렸다.

나 또한 그러한 파괴적 행동을 경험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무기력에 빠질 때가 있다. 당시엔 이해가 되지 않는 기분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인간관계도 완만했으며 제정상태도 평균이었기 때문이다. 일에 대한 스트레스도 없었고 오히려 하고자 하는 일들이 순조롭게 진행됐다면 될 때였는데. 그런 내가 왜? 이유를 알 수 없는 무기력은 계절이 바뀌어도 눈치 없이 계속되곤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소통이 아닌 단절의 방법을 택했다. 내가 생각해도 우울할 명분이 없어 보였고, 다른 사람에게 말한다고 내 마음이나 상황이 크게 바뀔 게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결국 무기력은 나름 삼키고, 내 방을 삼키고, 내 생활을 삼켰다. 밖에서는 문제없이 행동했지만, 혼자 있는 시간에는 방전된 채로 최소한의 움직임만 허용했다. 나를 방 안에 가두고는.


나의 무기력은 쓰레기 집을 만드는 양상으로 나타나진 않았지만, 그때 당시 내 방을 생각해 보면 아주 비슷한 점이 많다. '방'이란 공간은 내가 생활하는 공간인데, 생활을 꾸릴 기초적인 에너지마저 방전돼있으니, 방을 방치하게 되었다. 정리도 쉽지 않고, 요리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평소의 나라면 순서를 정해서 하나, 처리했을 일들이 뇌가 정지한 것처럼 무엇부터 손대야 할지 한숨부터 나왔다.


내 취향으로 가득했던 방. 내일을 기대하며 눈을 떴던 방은 어느덧 체계도 없고, 다짐도 무색해진 낯선 방이 되어버렸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내가 점점 나아지고 있구나'를 체감한 건 아니다. 시간이 한참 지난 후에야 돌아보니, '아, 그때 그랬지.' 하고 깨닫게 되었을 뿐이다. 배달음식을 시키는 게 아닌 스스로에게 요리를 해주고 있었고, 11시면 잠에 들어 아침에 눈을 뜨는 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핸드폰만 보던 시간에, 짧게라도 동네를 산책하고 움직이는 것들을 보았다.


"__아, 방 문 좀 열어줄 수 있어?"


누군가에게 문을 열어달라는 요청을 받으면, 마침 방 문 앞에 서 있는 사람. 그리고 손님을 초대할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은 쉽게 문을 열어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떠한 이유로 방 문을 여는 게 어려운 상황에 놓인 사람이라면 방 문을 열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상황에 따라 열어달라는 말이 버겁고, 두렵게 들릴 수도 있을 것이다.


'네 마음 잘 알아'라는 말이 때로는 얼마나 위선적으로 들리는지 잘 안다. 그리고 그 말은 당사자에게 큰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것도 안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자신의 방 안에서 외로워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고 싶다.


경험해 본 사람은 알 수 있다. 모든 사람은 자신만의 방이 있고, 그 방은 주인 사정에 따라 열릴 수도, 닫힐 수도 있다는 것을 말이다.


여전히 나는 종종 파괴적 행동을 한다. 그리고 방 문을 닫고 싶을 때가 있다.

언젠가 다시, 내가 방 문을 걸어 잠게 된다면 이 글을 보고 '시간은 흐른다'는 진리를 상기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마음의 방을 점검중인 누군가도, 이 글을 보고 작게나마 안도의 숨을 내 쉬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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