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J. 마이어가 말한 여섯 영역 가운데 가장 첫머리에 놓인 것은 다름 아닌 영적 영역이었습니다.
그는 “인생의 기초는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뿌리에 있다”고 했습니다. 재정은 다섯 번째, 직업은 여섯 번째에 두고, 영적 영역을 언제나 첫 단추로 삼았습니다.
저 역시 이 말에 깊이 공감합니다.
제 삶은 늘 신앙으로 시작했고, 신앙으로 지탱되어 왔습니다. 하루를 열며 말씀을 묵상하는 시간, 교회 공동체와 함께 드린 예배, 그리고 찬양대에서의 섬김은 제 인생의 리듬을 이루어 온 중심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길이 언제나 평탄했던 것은 아닙니다.
젊은 날에는 생계와 일터의 무게 속에서 신앙이 자주 흔들렸습니다. 외국인 관광택시를 운영하던 때, 하루 종일 운전대를 잡고 나면 주일 예배에 빠지거나 찬양대 연습을 빼먹은 날도 있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제 마음은 이상하게 공허해졌습니다. 성공을 향한 몸부림은 있었지만, 삶의 중심을 잃어버린 듯한 불안이 밀려왔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때마다 다시 설계도를 펼쳐야 했습니다.
중심선을 다시 긋고, 기준점을 다시 세우지 않으면 삶이 곧바로 기울어지는 것을 절감했습니다. 저의 두 번째 설계도에서 가장 굵은 선은, 그래서 언제나 신앙의 기둥이었습니다.
코로나 시절은 그 기둥이 크게 흔들리던 시간이었습니다.
교회 문이 닫히고, 찬양대의 노래가 멈추었습니다. 합창은 사라지고 소수의 솔리스트만이 예배에서 찬양을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오랜 세월 서 있던 찬양대 자리에 설 수 없던 그 공백은, 제 인생의 설계도 한 귀퉁이가 뚝 떼어진 듯한 허전함이었습니다.
저 역시 집에서 온라인 예배를 드리며 기도했습니다.
“주님, 이 상황이 속히 지나가게 해주십시오. 다시 함께 찬양하게 해주십시오.”
그 시간은 고독했지만, 뜻밖에도 한 가지를 더 또렷하게 하게 했습니다. 신앙은 건물 안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삶 전체를 지탱하는 보이지 않는 뿌리라는 사실입니다. 거실에서 드린 작은 예배, 혼자서 조용히 부른 짧은 찬송 한 곡조가 제 영혼을 다시 붙잡아 주었습니다. 비어 있던 설계도의 여백에 아주 얇지만 강한 선이 하나 그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폴 J. 마이어의 책들을 읽을 때마다 제 마음을 크게 울린 장면이 있습니다.
그의 가족 3~4대가 함께 예배하는 모습입니다. 손주, 증손주까지 함께 찬송하고 말씀을 나누는 그 장면을 떠올릴 때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아, 나도 저런 믿음의 가정을 이루어야겠다.” 성전을 향하는 마음이 제게는 최고의 기쁨이었습니다. 평소에는 대화를 길게 나누지 못하더라도, 멀리 떨어진 자녀들이 예배에 참여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제 평생의 소원이 이루어지는 감격을 느꼈습니다. 전도를 크게 해본 적은 없지만, 이것이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전도의 열매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 순간만큼은 제 설계도의 가족 영역에도 굵은 선이 다시 그어졌습니다. 신앙의 선과 가족의 선이 서로를 지지하며 한데 엮였습니다.
또 하나 잊을 수 없는 고백은 존 맥스웰 목사의 서문에서 만난 이야기입니다.
그는 젊은 전도사 시절, 폴 마이어의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삶의 전환을 경험했다고 했습니다. 단지 강의의 힘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폴의 삶 그 자체가 메시지였기 때문입니다. 특히 그의 침대 옆 테이블에는 언제나 돕고 있는 사람들, 도와야 할 사람들의 명단과 중보기도 제목이 놓여 있었다고 합니다. 폴은 매일 아침, 기쁨으로 눈을 뜨자마자 그 명단을 붙들고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불러가며 기도로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저는 그 대목에서 오래 멈추었습니다.
교육자나 기업가이기 이전에, 그는 참된 신앙인이었습니다.
물질로도, 기도로도 수많은 사람을 도왔습니다. 그 모습이야말로 토탈퍼슨의 첫 기둥이 어떻게 다른 영역을 살려내는지를 증언합니다. 저는 그 이야기 앞에서 제 부족함을 보았고, 동시에 한 가지를 배웠습니다. 가장 큰 헌신은 거창한 프로그램이 아니라 기도로 누군가의 이름을 붙드는 일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그래서 저는 작은 기도의 습관을 회복하기로 했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잠시라도 말씀을 펴고, 가족과 이웃의 이름을 떠올리며 기도했습니다. 멀리 있는 자녀들을 위해, 교회 공동체를 위해, 병중에 있는 지인을 위해 조용히 이름을 불렀습니다. 그 순간, 겉으로 보이는 현실은 달라지지 않아도 마음의 중심선이 다시 똑바로 서는 경험을 했습니다. 기도는 위기를 없애 주는 요술이 아니라, 위기 속에서도 설계도를 다시 보게 하는 눈이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저는 1948년에 태어나 올해로 76세가 되었습니다.
긴 세월을 돌아보면, 제 삶에서 중심을 잡아 준 것은 언제나 신앙이었습니다. 세상일에 치이고, 인간관계에 지치고, 건강이 흔들려도, 다시 무릎 꿇는 자리에서 힘을 얻었습니다. 폴 마이어가 토탈퍼슨의 첫 자리에 영적 영역을 둔 이유를 이제는 분명히 압니다. 신앙은 나머지 모든 영역을 지탱하는 기초이기 때문입니다.
저의 두 번째 설계도는 신앙이라는 굵은 선 위에 세워져 있습니다.
이 선이 무너지지 않는 한, 가족도, 건강도, 재정과 지성, 사회적 기여의 선들도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습니다. 신앙의 선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가장 깊은 곳에서 전체 그림의 균형을 붙잡아 줍니다. 그것이 저의 경험이자 고백입니다.
돌아보면, 코로나의 공백 속에서 제가 다시 발견한 것은 신앙의 기쁨이었습니다. 성전을 향하는 마음, 가족 예배의 감격,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하는 작은 습관. 이 모든 것이 합쳐져 제 설계도의 기초 공사가 새롭게 다져졌습니다. 설계도는 화려한 선들만으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기초를 다지는 시간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제게 그 기초는 언제나 신앙이었습니다.
이제 저는 압니다.
영적 영역의 선이 살아 있을 때, 나머지 영역도 숨을 쉽니다.
신앙이 중심에 서 있을 때, 저는 다시 출발할 수 있습니다.
오늘도 저는 조용히 기도의 연필을 들고, 제 설계도의 중심선을 한 번 더 덧그립니다. 어제보다 조금 더 곧게, 조금 더 깊게.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여러분의 인생 설계도에서 가장 굵은 선은 무엇입니까?
다음화 예고
✅ 다음 3화에서는 제가 찬양대에서 배운 삶의 자세를 전합니다.
“삶은 독창이 아니라 합창”이라는 깨달음이 어떻게 제 설계도의 또 다른 굵은 선이 되었는지, 그리고 팬데믹의 공백 속에서도 그 선이 어떻게 유지되었는지 함께 나누겠습니다.
해시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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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연재는 브런치북 『토탈퍼슨-후반전의 길』 시리즈의 일부입니다.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 삶의 방향을 찾는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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