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평생을 돌아보며 봉사를 특별히 계획해서 실천한 기억은 많지 않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되짚어 보면 제 삶의 많은 순간들이 이미 봉사의 마음과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그것은 거창한 봉사 활동이 아니라, 제가 서 있는 자리에서 묵묵히 내어주고 나누는 삶이었습니다.
20대 후반부터 30대 말까지 저는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해외 건설 현장에서 10년 가까운 세월을 보냈습니다. 사막의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매일같이 돌덩이와 먼지 속에서 일했습니다. 그곳에서의 삶은 봉사를 생각할 겨를조차 없었습니다. 살아남는 것이 최우선 과제였으니까요. 하지만 돌이켜 보면, 함께 현장을 지켜낸 동료들과의 우정과 서로의 짐을 조금씩 나누던 그 시간 또한 넓은 의미에서 봉사의 한 조각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40세에 귀국해 본격적으로 교회 생활을 시작하면서, 봉사의 의미를 더 구체적으로 배우게 되었습니다. 청년부 활동을 하며 여름에는 농촌으로 가서 집을 고치고 밭일을 돕고, 겨울이면 어려운 어르신들께 연탄을 나르던 장면을 보았습니다. 직접 참여한 기억은 많지 않지만, 그 현장을 바라보며 ‘남을 돕는 일은 이렇게 구체적이고 따뜻한 것이구나’라는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찬양대에서 솔선수범하여 연습하고 예배를 준비하는 일도 봉사의 또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예배를 영어로 SERVICE라고 부른다는 사실이 늘 마음에 걸렸습니다. 왜 굳이 예배를 서비스라고 할까? 시간이 흐르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태도, 이웃을 향한 헌신의 태도, 그 모든 것이 봉사였고 그것이 곧 예배였습니다.
직장 생활 후반기에 저는 전사 사무혁신 운동의 팀장을 자원했습니다. 컨설턴트들은 저를 두고 “오픈 마인드로 프로젝트를 이끌었다”고 칭찬했습니다. 그때 배운 것은 봉사가 꼭 구호품을 나누거나 직접적인 돕는 행위만은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팀원들의 의견을 존중하고, 길을 열어주며, 함께 성과를 이루어 가는 과정 역시 봉사였습니다.
자영업을 하던 14년 동안에도 ‘서비스’라는 단어를 늘 마음에 새기고 손님을 대했습니다. 때로는 궂은 일도 마다하지 않았고, 불편한 요구에도 최대한 정성을 다했습니다. 지금 돌이켜 보면, 그것이 바로 제게 주어진 봉사의 자리였습니다. 작은 친절 하나가 손님의 마음을 바꾸고, 그들의 하루를 가볍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은퇴 후에는 주택연금 명예홍보대사로 활동하면서 수많은 분들을 상담했습니다. 처음엔 단순히 제 경험을 나누는 일에 불과하다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제 이야기가 누군가에게는 삶을 바꾸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어떤 분은 두려운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와 한 시간 넘게 상담을 이어갔습니다. 이야기를 마친 뒤 그분은 “앞으로의 삶이 덜 막막하다”고 고백했습니다. 그 순간 저는 깨달았습니다. 봉사는 남을 세우는 일이면서 동시에 내가 다시 세워지는 길이라는 것을요. 주택연금 상담은 단순한 정보 전달을 넘어, 누군가의 인생 설계도를 다시 그려 주는 일이 되었고, 그것은 제게 깊은 보람이 되었습니다.
또 하나 잊을 수 없는 경험은 시니어TV 강연이었습니다. 강사활동을 그만둔 지 20년이 넘어, 새롭게 PPT를 만들고 대본을 준비하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여러 번 포기하고 싶었지만, 끝내 무대에 섰습니다.
녹화 중 담당 PD가 갑자기 “대본 없이 제목만 가지고 진행해 달라”고 요청했을 때, 순간 머리가 하얘졌습니다. 그러나 곧 마음을 가다듬고 제목 하나를 붙잡고 제 삶의 이야기를 풀어냈습니다. 녹화가 끝난 뒤 들은 평가는 뜻밖이었습니다. “즉흥으로 한 부분이 더 좋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을 들으며 저는 깨달았습니다. 내 안에 쌓여 있던 삶 자체가 이미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자산이었고, 그것이 비전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요. 봉사는 현재의 작은 도움을 넘어, 미래를 밝히는 등불이 될 수도 있음을 보았습니다.
주택연금에서 저는 보람을 얻었고, 시니어TV에서는 비전을 보았습니다. 봉사는 억지로 만들어내는 특별한 행위가 아니라, 내가 가진 것을 내어놓을 때 자연스럽게 피어납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저는 더 깊은 기쁨을 누렸습니다.
봉사는 남을 돕는 것 같지만, 사실은 나를 다시 세우는 길이었습니다. 그것이 인생 후반전의 설계도 위에서 만난 가장 큰 기쁨이었습니다.
19화에서는 “관계의 설계도, 함께 걷는 길”을 다룹니다.
봉사가 나를 넘어서는 기쁨이라면, 관계는 그 기쁨을 함께 나누며 평생을 동행하는 여정입니다.
한줄예약
✅ “봉사는 남을 돕는 일이 아니라, 나를 다시 세우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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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연재는 브런치북 『토탈퍼슨-후반전의 길』 시리즈의 일부입니다.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 삶의 방향을 찾는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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