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우리도
과거 제3세계 대학들에게 '국제화'는 결코 가볍지 않은, 때로는 민감한 화두였다. 선진국 대학과의 협력이 자칫 자국 지식사회의 정체성을 훼손하고, 특정 국가의 대학 모형을 무분별하게 이식하는 과정으로 비치기도 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과거의 교육 원조는 기존 세계질서에 순응하는 리더를 양성하는 소프트파워의 도구로 활용되기도 했다. 그러나 오늘날, 이러한 학문 종속의 이데올로기를 넘어 세계 대학들은 '공통의 학문적 가치'와 '실질적 국가 발전'을 위해 새로운 차원의 협력을 모색하고 있다.
대한민국 고등교육의 역사에는 국제개발협력을 통해 국가 발전의 기틀을 마련한 상징적인 사례가 있다. 바로 1950년대 중반부터 1960년대 초까지 진행된 '미네소타 프로젝트(The Minnesota Project)'다. 미국 국제협력처(ICA, 현 USAID의 전신)의 지원으로 시행된 이 사업은 미네소타 대학교가 서울대학교의 의학, 공학, 농학, 행정학 분야를 지원한 프로그램이었다.
당시 약 220여 명의 서울대 교수가 미네소타 대학에서 연수와 학위 과정을 이수했고, 이를 통해 한국 고등교육의 교육과정이 현대적으로 개편되었다. 이는 단순한 재정 지원을 넘어 한 국가의 지식 생산 역량을 근본적으로 체질 개선한 사례로 평가받으며, 오늘날 USAID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교육 원조 모델 중 하나로 손꼽힌다.
반세기가 지난 지금, 대한민국은 '받는 나라'에서 '주는 나라'로 탈바꿈하여 그 노하우를 세계에 나누고 있다. 2012년부터 본격화된 교육부의 '국제협력선도대학 육성·지원사업'이 그 핵심이다.
초기 3~4개 대학으로 시작한 이 사업은 2024년 기준 전 세계 20여 개국, 30개 이상의 사업단으로 확대되어 개발도상국 대학의 학과 신설과 교육과정 개편을 지원하고 있다. 단순히 건물을 지어주는 원조를 넘어, 7년이라는 장기적인 협력을 통해 대학 전체의 국제역량을 강화하고 시스템을 혁신하는 데 집중한다. 이는 한국 대학이 가진 고등교육 체계화 역량이 세계적인 수준임을 증명하는 지표이기도 하다.
교육부뿐만 아니라 한국국제협력단(KOICA)을 통해서도 대학의 전문성을 활용한 사업이 활발히 전행되고 있다. 개별 대학의 역량을 기반으로 한 대학교육과정 개편 사업, 현지 교수진의 박사학위 취득 지원(SP, Scholarship Program), 그리고 우리 청년들이 국제무대에서 실무 경험을 쌓을 수 있는 인턴십 정책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코이카는 지역별로 '국제개발협력센터'를 지정·운영하며 대학이 해당 지역의 개발협력 거점이 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이러한 지산학(地産學) 연계 모델은 대학이 보유한 학문적 자산을 공적개발원조(ODA)와 결합하여 시너지를 내는 훌륭한 통로가 된다.
국제개발협력은 이제 대학의 사회적 책임을 넘어 '글로벌 경쟁력' 그 자체가 되었다. 대학이 개도국 대학과의 공동연구에 나서고 학생들의 해외 봉사활동을 적극 지원하는 것은, 종국적으로 한국 대학의 평판을 높이고 우수한 유학생을 유치하는 강력한 마케팅 자산이 된다. 현지 대학과 맺은 깊은 신뢰 관계는 그 나라의 우수 인재들이 한국으로 유학 오는 자연스러운 통로를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대학이 가진 지식과 혁신의 역량은 국경을 넘어 전파될 때 더 큰 가치를 발휘한다. 개발협력을 통해 쌓아 올린 대학의 국제적 명성은 대한민국 고등교육의 위상을 높이는 동시에, 세계 보편적 교육 가치 확산에 기여하는 길이다. 더 많은 한국 대학이 국제개발협력의 주역으로 나서서 '세계인의 성장을 돕는 글로벌 플랫폼'으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해 나가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