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80년, 우리가 몰랐던 교육정책이야기 (1)

1) 1959 한국 초등의무교육 실현

by Clara Shin


2010년 세계는 마침내 초등 보편교육을 달성했다. 국제 교육계에서는 한 국가의 초등학교 취학률이 90%를 넘을 경우 이를 보편교육이 실현된 것으로 본다. 그렇다면 한국은 언제 이 기준을 달성했을까?


한국은 1948년, 초등 의무교육 규정을 제헌헙법에 포함하고 본격적인 교육 정책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곧바로 발발한 6.25 전쟁은 이 계획을 일시 중단시켰는데 전쟁이 끝난 후 정부는 다시 초등 의무교육을 재추진했다. 그 결과, 1959년에는 초등학교 취학률이 95.9%에 도달함으로써 사실상 초등 보편교육을 완성하게 되었다. 당시 1인당 국민소득이 60달러에 불과했던 한국의 상황을 고려할 때, 이는 기적과도 같은 성취였다.


이러한 교육적 도약은 법적·제도적 기반 위에 이루어졌다. 1949년에 제정된 교육법 제8조는 “모든 국민은 6년의 초등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다”라고 명시했으며,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이를 실현하기 위한 학교 설치와 운영의 책임을 지도록 했다. 또한, 아동의 친권자나 후견인에게도 교육의무를 부여함으로써, 교육이 더 이상 선택이 아닌 권리이자 의무임을 명확히 했다.


정부는 국가 재정의 약 10%를 교육에 투입하며 교육에 대한 전폭적인 투자를 단행했다. 그중에서도 70% 이상이 초등교육 분야에 집중되었으며, 지방세의 일정 비율을 교육에 배정하는 법령을 통해 안정적인 재정 확보에 힘썼다. 또한,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원조를 교실 신축 등 교육 인프라 확충에 효과적으로 활용했고, 사범학교 설립을 통해 교사 양성에도 속도를 냈다.


1959년의 초등 의무교육 완성은 단순히 숫자상의 성공에 그치지 않는다. 당시 기준으로 세계에서 초등학교 취학률 90%를 넘긴 국가는 극히 드물었고, 특히 아프리카와 중동 일부 국가들은 2010년이 되어서도 이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런 배경을 고려할 때, 한국의 성취는 세계 최빈국 중 하나였던 나라가 이룬 눈부신 성과이며, 정부의 교육에 대한 강력한 의지와 전략적 접근의 결과였다.


초등 보편교육의 실현은 또 다른 중대한 의미를 지닌다. 바로 여아 교육의 확대이다. 유교적 전통 아래 오랫동안 교육에서 소외되어 왔던 여아들이 이 정책을 통해 동등한 교육 기회를 보장받게 된 것이다. 남녀 차별 없이 모든 아동의 교육을 부모의 의무로 규정한 한국은, 1959년 당시 북미 지역 다음으로 세계에서 여아 초등학교 취학률이 가장 높은 국가로 도약하게 되었다.


물론 현실의 교육 여건은 매우 열악했다. 과밀 학급은 일상이었고, 2부제 또는 3부제로 학교가 운영되었으며, 천막학교도 존재했다. 하지만 그러한 환경 속에서도 정부는 '모든 아동에게 교육 기회를 보장한다'는 원칙을 끝까지 지켰고, 이로 인해 단기간에 문맹률을 급격히 낮출 수 있었다. 나아가 이러한 기초 교육의 확산은 1960년대 이후 한국 사회가 농업 중심에서 제조업 중심의 산업사회로 전환하는 데 결정적인 기초가 되었다.


한국 초등 의무교육의 보편화는 단순한 정책의 성공이 아니다. 이는 국가의 미래를 향한 믿음과 교육을 통한 사회 발전에 대한 확신이 만들어낸, 진정한 기적이었다.

2) 토지개혁과 교육정핵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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