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1974 산업체 부설학교와 여학생 교육기회 확대
1960년대 한국은 초등 의무교육을 완성한 후, 15세에서 19세 사이 여성들의 경제활동 참가율이 1960년 28.6%에서 1975년 44.5%로 급격히 증가하였다. 이러한 변화는 주로 섬유 분야 제조업에 종사하는 여성 노동자들의 증가로 나타났는데, 당시의 가부장적 사회 분위기 속에서 많은 가정의 딸들이 남자 형제들의 학업을 지원하기 위해, 가정의 생계를 위해 공장에 나가 일하는 경우가 흔하였다.
1973년 박정희 대통령이 경남의 한일합섬 공장을 시찰하던 중 여공들이 학업을 계속하고 싶다는 간청을 듣게 되었고 대통령은 산업체에서 일하면서도 공부할 수 있는 학교를 설립하도록 지시하였다. 이러한 배경에서 정부는 근로 청소년들에게 정규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면서 동시에 산업 인력을 양성하는 방안을 모색하였고, 1974년 초·중등교육법에 근거 규정을 마련하여 산업체 부설학교 제도를 시행하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학교를 설립하기 위해서는 학교법인을 설립해야 하지만, 일정 규모 이상의 산업체의 경우 학교를 설립할 수 있도록 허용하였으며, 교육과정 이수 기준도 완화하여 산업 현장의 청소년들이 학업을 지속할 수 있도록 유도하였다. 1974년에는 3학년 9학급의 학교가 설립되었고, 1978년에는 전국 각지에서 학생이 모여 120학급까지 증설되었다. 1981년에는 143개의 산업체 부설학교가 운영되었으나, 사회경제수준이 발전하면서 여학생들의 일반 중등학교 취학률이 증가하였고, 현재는 학생 수가 현저히 줄어들었다.
산업체 부설 고등학교는 근로 청소년들에게 교육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산업체 내에 설립된 학교이다. 이와 별도로, 일부 공립 중·고등학교에서는 산업체 근로 청소년들을 위한 야간 특별학급을 운영하였다. 이러한 특별학급은 산업체 근로 청소년들이 근무 후 학업을 이어갈 수 있도록 기존 학교 시설을 활용하여 야간에 수업을 진행하였다. 이러한 정부의 청소년 근로자에 대한 다양한 교육 기회 확대 정책에 기반하여 중등교육 취학률은 1980년대 말 90%수준까지 도달할 수 있었다. 다만 이 제도를 악용하여 어린 학생들을 저임금노동자로 활용하기 위한 통제기제로 활용된 사례들이 있고 학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비판들도 있음은 주지할 필요가 있다.
이 제도는 특히 여학생들에게 활용되었는데, 당시 여성의 교육 기회가 상대적으로 적었기 때문에 산업체 부설학교는 여성 노동자들에게 학업을 이어갈 수 있는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최근 개발도상국에서도 이러한 사례가 있다. 방글라데시 치타공에 위치한 한국의 섬유회사인 영원무역은 여성 노동자 고용과 교육 지원에서 선구적인 역할을 해왔다고 평가 받고 있다. 방글라데시에서 여성의 경제활동이 제한적이었던 시기에, 영원무역은 최초로 여성 인력을 고용하여 저소득층 여성들의 경제적 자립을 지원하였다. 방글라데시의 섬유산업은 여성 고용 비율이 가장 높은 분야로, 전체 노동자의 약 68%가 여성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러한 여성 노동자들에게 일하면서 학업을이어갈 수 있는 여건을 제공하여, 그들의 개인적 발전에도 기여하는 측면이 있닥. 저자는 분명 경영진이 한국적 경험에서 확신을 가지고 이러한 교육들이 여성 청소년 노동자에게 제공되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