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교육정책의 역사: 개발도상국에서 기술강국으로
최근 들어 전 세계적으로 STEM(Science, Technology, Engineering, Mathematics) 교육이 중요한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하지만 한국의 기성세대에게 있어 과학교육은 결코 새로운 이슈가 아니다. 어릴 적부터 우리는 과학 경시대회, 수학 경시대회, 과학상상화 그리기 대회, 과학의 달 행사 등 다양한 과학 관련 활동에 익숙하게 자라왔다. 직장인이 된 이후에는 오히려 수많은 과목 중 과학교육을 담당하는 부서만 존재하는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던 기억이 있다.
이처럼 과학교육이 한국 사회에 자연스럽게 녹아든 데에는 정부의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정책이 뒷받침되어 있었다. 많은 개발도상국들이 최근 들어 과학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에 비교하여, 한국은 정부 수립 초기부터 과학을 국가 발전의 핵심으로 인식하고 집중적으로 투자해 왔다. 오늘날에는 1인당 GDP 대비 과학기술 연구분야에 가장 높은 수준의 투자를 하는 나라 중 하나로 언급되기도 한다.
1948년 정부 수립과 함께 문교부에 ‘과학교육국’을 설치한 것은 이러한 과학 중심 정책의 시작을 상징한다. 제1공화국 시기에는 과학과 기술을 국가 성장의 열쇠로 인식하였고, 한국의 MIT를 만들겠다는 비전 아래 인하공과대를 설립하였다. 서울대와 한양대 등에는 원자력공학과를 설치하고, 우수 인재들을 해외로 유학 보내며 첨단기술을 도입하고자 한 점, 1959년 한국원자력연구원을 최초의 국책 연구기관으로 설립하며 과학기술 연구 기반을 다지기 시작하였다는 점들도 우리가 몰랐던 정책들이다.
제3공화국 시기에는 과학기술에 대한 투자가 본격화된다. 국가 재정이 넉넉하지 않던 상황에서, 정부는 국가 산업에 꼭 필요한 분야를 선별하여 집중적으로 지원하는 전략을 택하였다. 1966년에는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을 설립하고, 해외에서 활동 중이던 연구자들을 파격적인 조건으로 귀국시켰다. 이어 1967년에는 과학기술처가 발족, 「과학기술진흥법」을 제정이 진행되었고, 1971년에는 한국과학기술원(KAIST)을 설립하여 전략 산업을 이끌어갈 고급 과학기술 인재 양성에 나섰다. 서울대학을 비롯한 지역국립대의 공과대학에 대한 정원확대 및 재정지원도 대폭 확대되었다.
KAIST 설립과 관련하여 박정희 대통령은 문교부에 특수 과학대학원의 설립을 지시했지만, 문교부가 반대하자 이를 과학기술처 산하에 직접 설립하게 하였다는 일화가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전자공학을 전공한 것이 아버지의 영향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이는 당시 다른 나라의 지도자 자녀들이 주로 정치나 경제, 사회 분야를 전공한 것과 비교된다.
정부는 대학의 정원 정책에서도 과학기술 분야에 우선순위를 두었다. 1995년 문민정부 이전까지는 대학의 학생정원을 정부가 강력히 통제하였는데, 전략산업과 관련된 이공계 학과의 정원은 지속적으로 확대하였다. 반면 인문계는 증원을 통제함으로써, 결국 인문계보다 낮았던 이공계 정원 비율이 역전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는 일본과 비교할 때 차이점이 더욱 두드러진다. 일본은 1930년대 이후 이공계 정원 비율을 거의 유지한 반면, 한국은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을 통해 이공계 정원을 크게 확대해 왔다.
결국 이러한 전략적 계획 수립, 전담 부서 설치, 관련 법령 제정, 예산 확보, 인력 양성기관 설립 등의 전면적인 정책 추진과 국민들의 노력과 열정이 더해져, 한국은 오늘날 세계 기술을 선도하는 국가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한국의 과학교육 정책은 단순한 교육정책을 넘어, 국가 발전을 이끌어 온 핵심 성장 전략이자 세계가 주목하는 성공 모델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