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80년 : 우리가 몰랐던 교육정책이야기(7)

1970 수도권 대학정원규제와 국립대학 특성화 추진

by Clara Shin

오늘날 대한민국의 대학 취학률은 90%를 넘어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불과 반세기 전만 해도 상황은 전혀 달랐다. 1970년대 중반까지 우리나라의 대학 취학률은 7% 수준에 불과했으며, 해방 직후인 1945년에는 전국의 대학생 수가 7,819명에 그쳤다. 제1공화국 시기에는 국민들의 교육에 대한 열망과 교육을 향한 독지가들의 헌신으로 사립대학이 급격히 늘어났고, 대학생 수도 증가하여 일시적으로는 선진국 수준의 대학 진학률에 이르기도 했다. 그러나 당시 경제적 기반이 매우 취약했기 때문에, 이러한 대학 확대는 높은 청년 실업률과 일부 사립학교들의 편법 운영으로 이어졌고, 고등교육에 대한 국가정책 개입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1960년 4.19 혁명 이후 등장한 박정희 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대학 정원을 축소하기 위한 정책을 추진하였다. 특히 사립대학의 무분별한 정원 확대를 억제하고, 대학에 대한 국가 통제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국가 산업구조를 농업 중심에서 경공업, 나아가 중화학공업 중심으로 전환하기 위한 경제개발계획에 따라, 고급 기술인력 양성이 필수적으로 요구되었다. 이에 따라 정부는 공업계 고등학교를 지원하는 한편, 국립대학 공과대학의 정원을 대폭 늘리고, 지역 특화 산업에 필요한 인력을 양성하기 위한 재정 지원을 확대하였다. 그 결과, 국립대학 중심으로 정원이 크게 증가하였고, 지역별 특성화 교육 여건도 개선되기 시작하였다.

반면 수도권 대학의 정원 증원은 전면적으로 제한되었는데 당시 대학의 정원을 늘리기 위해서는 국무회의의 심의를 거쳐야 할 정도로 강력한 통제를 유지하였다. 정부는 이러한 수도권규제는 서울과 수도권으로의 대학생 집중을 막고, 지역 균형 발전을 도모하기위해 필요하다고 판단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3공화국의 대학 정원 축소 시도는 군사정권 하에서도 실현되지 못했다. 오히려 실업계 고등학교 확대, 고교 평준화 정책 등으로 중등교육 기회가 급속히 확장되면서 고등학교 취학률은 80%에 육박하였고, 이는 대학 진학 수요 증가로 이어졌다. 대학 취학률 7% 수준으로는 이러한 수요를 감당할 수 없었고, 정부는 1978년부터 연 평균 12%씩 정원을 늘리는 계획을 세워, 1970년대 말부터 대학 정원을 점차적으로 확대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도 수도권 대학에 대한 정원 증원은 엄격히 제한되었고, 야간 과정 확대만이 허용되었다. 결과적으로 국립대학과 지방 소재 대학의 정원 비중이 높아지는 효과를 낳았으며, 이는 지역 고등교육의 기반을 강화하는 데 일정한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수도권 정원 규제 정책은 1980년 신군부가 도입한 졸업정원제 정책에는 반영되지 않았고, 이후 수도권 대학들이 정원을 대폭 확대하게 되면서 다소 개선되던 사립대 의존현상이 심화되어 현재와 같은 사립대학 중심 구조가 고착화되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결론적으로, 한국의 대학 정원 정책은 고도성장기 산업 수요에 부응하면서도 지역 간 균형을 고려한 정부의 계획적 개입의 산물이었다. 특히 수도권 대학의 정원 규제와 국립대학의 특성화는 지역 고등교육의 기반 조성과 산업 인력 양성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중요한 정책이었다고 볼 수 있다. 반면 군사정권의 대표적 비판세력이었던 대학생들 규모를 수도권지역에서 최대란 억제하려하였던 정부의 숨겨진 의도도 있었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고 이는 1970년대 말 민주주의를 위한 대표적인 대학생 시위가 지역을 중심으로 촉발되었다는 사실과도 일맥 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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