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80년 : 우리가 몰랐던 교육정책 이야기(9)

1980 한국형 대학입시제도의 출발

by Clara Shin

한국의 대학 입시 제도는 다른 나라와 비교하여 독특한 특징을 지니고 있다. 특히, 대학별 고사가 없고, 고등학교 성적을 학교의 성취 수준에 관계없이 일률적으로 적용하는 점이두드러진다. 예를 들어, 필리핀은 대학별 시험을 통해 학생을 선발하며, 미국은 지원자의 출신 고등학교를 고려 요소로 활용한다.


1970년대 말까지 한국의 대학 입시는 예비고사와 대학별 본고사를 치러야 했다. 대학별 본고사는 난이도가 높아 특별한 준비 없이는 합격이 어려웠다. 1980년, 신군부는 국민적 지지를 얻어 정권의 정당성을 획득하기 위해 과외와 대학별 본고사를 금지하고 고등학교 내신을 반영하는 등 대대적인 교육 조치를 단행했다. 그 결과, 고등학교 성적과 국가 대학 학력고사 점수만으로 대학에 입학하도록 하는 제도가 도입되었다. 이는 대학이 아닌 정부가 학생 선발 기준을 정하는 강력한 국가 통제의 일환으로 다른 나라에서 찾아보기 힘든 제도이다.


당시 문교부는 고등학교 내신 성적 반영 비율을 제시하여, 전국의 모든 학교에서 일정 비율의 학생들이 대학 입시에서 동일한 점수를 받도록 했다. 고등학교 간 성취 수준의 차이는 무시되었다. 서울의 명문고등학교와 산골마을의 1등이 같은 점수를 받는 제도이다. 또한 모든 대학입시의 내신 반영 비율은 1981년 20%, 1982년 30%, 1983년 50%까지 확대되었다. 이러한 비율이 지금은 당연하다고 느끼지만 당시 서울대의 내신 반영률이 2%에 그치고 주요 사립대는 전혀 반영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매우 파격적인 조치였다. 이를 통해 전국 어느 지역에서든 학교 공부에 충실하고 국가 대학 입학시험을 잘 치른 학생이 서울대 및 주요 대학에 입학할 수 있는 기회가 대폭 확대되었다.


또한, 정부는 졸업 정원제를 실시하여 대학의 신입생 인원을 50% 이상 더 선발할 수 있도록 했다. 이로 인해 많은 지방의 우수한 학생들이 서울의 대학에 입학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국가 대학 학력 평가는 교육 과정 범위 내에서 출제되어, 대학별 본고사를 통해 입학하는 것보다 서민층에게 유리한 방식이었다. 졸업정원제는 대학시설과 교원이 준비되지 않은 여건에서 갑작스러운 정원증원으로 대학현장에 막대한 혼란을 가져왔고, 대학생의 시위를 학업통제로 막고자 하였던 숨겨진 의도가 있던 제도였으나, 기회 확대측면에서만 본다면 당시 치열했던 입학경쟁을 완화시키는 역할을 하였다. 졸업정원제와 함께 전대학에 강제된 장학금확충 정책 또한 서민층 자녀의 대학입학기회 확대에 기여하였다.


어느 고위공무원의 회고대로 한국의 대학 입시 제도는 사회적 지위 변동 과정에서 대학교육의 기회를 누구에게 배분할 것인가에 대한 신분 제도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1980년대부터 대입 제도의 근간은 그 기조를 유지해 왔으며, ‘3불 정책’으로 알려진 고교 등급제, 본고사, 기여 입학제 금지가 포함된다. 미국과 일본에서 허용되는 기여 입학제는 한국에서는 금지되어 있다.


2000년대 이후, 대학의 신입생 선발 자율성이 확대되고 창의성과 다양한 적성을 가진 학생들이 대학에 입학할 수 있도록 다양한 전형이 도입되었다. 그러나 기본적인 원칙은 유지되고 있다. 교육적 측면에서 학생들에게 부담이 되는 고교 내신 등급제를 정부가 유지하는 이유는 이로 인해 발생하는 역효과를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당시 이러한 제도 변화로 인해 지방 출신의 우수한 학생들이 서울의 주요 대학에 입학할 수 있는 기회가 확대되었다. 드라마 주인공인 제주도 가난한 집안딸인 금명이가 서울대 영문과에 합격할 수 있었던 원인이며 한두명이 아닌 많은 금명이가 서울대에 입학할 수 있었던 원인이다. 입시 제도 변화로 등장한 지방 출신 서민 자녀들의 사회적 이동성은 그 이전 시기에 비해 확연하게 확대되었으며, 그 세대가 현재 50~60대에 해당한다. 이는 대학교육을 통한 사회 이동성의 혜택을 가장 많이 받은 세대로, 공부만 잘하면 대학에 갈 수 있고 대학만 가면 어디든 취직할 수 있었던, 현재 청년들의 부모님 세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