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80년 : 우리가 몰랐던 교육정책 이야기(10)

졸업정원제와 의과대학이 무슨 관계?

by Clara Shin

대학 시절, 선배들의 대화에서 종종 ‘졸업정원제’라는 용어가 등장하곤 했다. 그때는 그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지만, 대학 사회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 정책이라는 인상만 남아 있었다. 최근 의대 정원 확대와 관련하여 보건복지부 차관의 질의응답 중 오래간만에 졸업정원제가 언급되었는데 졸업정원제의 성패 또한 의대와도 관련이 있음은 참 신기하다.


우리나라는 대학의 학생 입학 정원을 국가가 법으로 규제하는 체제이다. 과거에는 개별대학의 정원 확대를 위해 정부의 승인이 필요했지만, 현재는 법 규정에 따라 일정 요건을 충족하면 대학이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다. 졸업정원제는 1980년 신군부의 교육 조치 중 하나로, 정원 관리를 입학 시점이 아닌 졸업 시점으로 변경하여 대학이 입학 시 더 많은 학생을 선발하되, 졸업 시에는 정해진 정원만을 졸업시키도록 한 제도였다. 당시 이 정책을 통해 대학 정원을 30% 추가 선발하고, 학업 과정에서 일정 비율을 낙제시켜 최종적으로 정해진 인원만 졸업시키는 방식을 계획했다.


1980년 교육조치로 이 정책이 전격 도입되었을 때, 대학 측에서는 시설과 교원이 준비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반대 의견을 표명했고, 학생들은 학업 경쟁을 통해 시위를 막기 위한 정책이라며 반발했다. 그러나 사립대학의 경우 열악한 재정 상황에서 도움이 되는 정책이었기 때문에, 일부대학의 경우 1981년 신입 정원을 150%까지 늘리는 등 환영하였다. 그 결과, 1983년 고등교육 취학률이 7% 수준에서 30% 수준으로 상승하여 고등교육이 엘리트 교육에서 대중 교육으로 전환되는 계기가 되었다.


제3공화국에서는 대학 정원을 이공계와 지방 대학에 한해 제한적으로 허용해 왔으나, 졸업정원제 시행 시에는 수도권 대학도 정원보다 많은 신입생을 선발할 수 있었고, 시설 투자가 크게 필요하지 않은 인문사회계 분야도 대폭 증원되었다. 이는 의도하지 않았던 결과를 초래했는데, 특히 인문사회계 정원 확대는 여학생들의 입학 가능성을 높여 대학 내 여학생 비율을 크게 증가시켰다.


독재 정권은 대학생들을 잠재적인 정권 비판 세력으로 간주하여 일반적으로 대학 규모를 늘리지 않는 경향이 있다. 제3공화국에서도 대학 정원을 과도하게 억제했다. 신군부의 정책 결정 이유를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대학 내 면학 분위기를 조성하여 학내 시위를 막을 수 있고, 학생들을 낙제시킬 수 있을 것으로 과신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미국과 독일처럼 국립대학이 대부분인 고등교육 체제와 달리, 사립대학이 80% 넘게 차지하는 구조에서, 또한 사회 지도층의 사학 참여도가 높은 분위기에서 정부 정책을 끝까지 고수하기는 어려웠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 정책은 갑작스럽게 도입되어 현장의 혼란을 초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졸업정원제에 대한 논의는 그 이전에도 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당시 우리나라 대학은 입학은 어렵지만 졸업은 너무 쉽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순수한 교육적 차원에서 졸업정원제를 도입하자는 학자들도 있었다. 이들은 독일과 미국의 사례를 예로 들었는데, 독일 대학과 미국 주립대학의 경우 어려운 학업 과정을 따라가지 못해 낙오하는 비율이 50%를 넘는 경우도 있어 대학 졸업이 매우 어렵다. 이러한 엄격한 학사 관리는 대학 진학 수요를 줄이는 역할도 한다. 졸업이 보장되지 않기 때문에 공부에 적성이 맞지 않는 학생들은 바로 직업 현장을 선택한다. 학력에 따른 임금 격차가 낮은 선진국적 노동 시장도 한몫을 한다. 우리나라의 학력에 따른 임금격차를 줄이고자 하는 정책도 당시 시작되었고 일정 부분 효과를 거둔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제도 도입 후 1년 만에 전국적으로 약 1,000여 명의 학생이 낙제될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남학생들의 경우 낙제를 피하기 위해 군 입대를 택하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여학생과 의과대학에서 적극적으로 불만을 제기했는데, 의과대학의 경우 교육 과정의 특성상 휴학을 하면 학업을 따라가기 힘들어 휴학으로 낙제를 피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정부에 일률적 낙제 정책 포기를 요구했다. 이 제도는 여대와 의대를 시작으로 대학에 자율권을 확대하는 방식으로 완화되다가, 1987년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여당의 적극적인 요청에 의해 정부가 일률적 비율의 낙제 방침을 철회하면서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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