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80년 : 우리가 몰랐던 교육정책이야기(14)

국가주도 영재교육, 언제 시작되었나?

by Clara Shin

1957년, 소련의 스푸트니크 인공위성 발사는 미국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고, 곧이어 수학과 과학 분야의 영재교육 열풍을 불러왔다. 이 사건은 단지 우주 경쟁의 시작이 아니라, 국가 차원의 인재 육성 정책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각인시킨 역사적 순간이었다.


한국 역시 비슷한 문제의식을 가졌던 시기가 있었다. 박정희 정부 시절, 미국 유학을 다녀온 학자들은 과학 실험과 연구 중심의 고등학교 설립 필요성을 주장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지금은 영재고가 아닌 공업고에 투자할 시기”라며 이들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후 산업이 기술집약적으로 전환되기 시작한 1970년대 말, 고급 두뇌 양성의 필요성이 점차 현실로 다가왔고,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신군부 정권은 과학고등학교 정책을 본격적으로 채택했다.


1982년 정부는 ‘영재교육 종합수행방안’을 수립하고, 이듬해인 1983년 국내 최초의 과학고인 경기과학고등학교를 설립했다. 당시 고등학교 평준화 정책이 강력히 추진되던 시점이었고, 과밀학급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지 않았던 때였다. 이 와중에 10개 반, 반당 20명 규모의 소수정예 과학고를 설립하고, 우수한 시설과 교사를 배치한 것은 국가로부터 받은 특혜임에 틀림없다. 공립학교보다 3배 이상의 예산이 투입되는 교육이었기에 졸업생들의 진로는 국민적 관심사가 될 수밖에 없었다.


현재 전국에는 20개 과학고에서 매년 약 1,600명의 학생이 선발되고 있고, 2000년 이후 추가로 설립된 영재고등학교에서는 매년 800명의 학생이 선발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이 졸업 후 실제로 과학 분야에 종사하는지는 미지수이다. 오히려 많은 졸업생이 의대로 진학하거나 민간 기업으로 진로를 변경하면서, 국가의 재정 지원이 본래의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여담으로 필자가 들렀던 한 정형외과에 해당전문의의 과학고 졸업장, 서울대 졸업장이 같이 걸려있었던 기억이 새삼 떠오른다.


과학고 입시의 과도한 사교육 유발 효과도 간과할 수 없다. 주요 사립대학들이 과학고 졸업생에게 입학을 선호하면서 일반고 학생들의 경쟁은 더욱 치열해졌다. 특히, 선행학습을 기반으로 과학고 입시를 준비했던 학생들이 과고 진학에 실패한 후 일반고로 진학하게 되면, 내신에서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게 되어 학습격차 문제를 심화시키고 있다. 1998년 도입된 비교내신 제도가 이슈가 된 적이 있다. 과학고 학생이 인문계나 의대에 진학할 경우 일반고 학생들과 같은 기준으로 내신이 산정되면서, 과학고 내에서 성적이 불리한 학생들은 자퇴 후 검정고시를 선택하기도 했다. 이는 내신 제도의 변화가 과학고와 일반고 간의 대학 진학 결과에 영향을 미쳤음을 보여준다.


최근 경기도 제2과학고 설립 논의가 불거지면서 과학고 제도 전반에 대한 관심이 다시 높아지고 있다. 또한 일부 과학고에서 신군부 시기의 기념물이 발견되며, 존치 여부를 둘러싼 논의가 붉어졌다. 이제는 과학영재교육이 과거의 평등 중심 교육철학과는 다른 방향으로 발전해야 할 시점이다. 한 명의 창의적 인재가 국가의 미래 산업과 사회적 가치 창출을 이끌 수 있는 시대, 영재교육의 필요성은 더욱 분명해졌다. 그러나 현재의 선발 구조와 졸업생 진로에 얽힌 문제들은 분명한 개선이 필요하다.


과학에 대한 진정한 재능과 탐구심을 지닌 인재들이 제대로 선발되고, 이들이 과학 분야에 지속적으로 헌신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더불어 과학고와 영재고를 거친 후 의학이나 경영 등 다른 진로로 전환한 졸업생에게는 국가가 지원했던 막대한 재정이 실질적으로 환수될 수 있는 방안도 함께 고민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만 과학 영재교육이 국가 경쟁력의 핵심인 세계 수준의 연구자를 길러내는 참된 통로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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