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과 경쟁 속의 대학: 평가 기반 재정지원 패러다임의 시작
오늘날 우리나라 대학들은 정부 재정지원 사업을 따내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수많은 대학이 각자의 발전계획을 제시하고, 경쟁력 있는 전략을 구상하여 정부의 선택을 받기 위해 노력한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경쟁 체제는 언제부터 시작된 것일까? 대학에 대한 정부 재정지원은 어떤 흐름 속에서 발전해 왔을까?
우리나라는 중등교육까지는 사립학교를 포함해 공립과 동일한 수준의 일괄적인 재정지원을 시행하고 있다. 교원의 보수는 물론, 시설 개축과 같은 재정적 뒷받침도 포함된다. 그러나 고등교육, 즉 대학에 대해서는 전혀 다른 방식이 적용된다. 일괄적인 지원 대신, 특정한 목적이나 필요에 따라 선별적이고 제한적인 재정지원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본격적인 대학 재정지원 체제는 1990년대 중반에 들어서야 시작되었다. 이전까지는 국립대학을 중심으로 소규모 예산이 일률적으로 배분되었고, 사립대학에 대한 지원은 거의 없었다. 1990년 당시 국내 총생산(GDP) 대비 고등교육 예산은 1.3%에 불과했으며, 정부가 부담하는 비율은 0.3%에 지나지 않았다. 2000년에 이르러서는 각각 2.02%와 0.6%로 상승하였지만, 여전히 OECD 국가들의 고등교육 투자 수준에 비하면 매우 낮은 수치였다.
재정지원 방식 또한 큰 변화를 겪었다. 1995년 전체 고등교육 재정지원 중 88%는 동일한 산식에 의해 일반지원 형식으로 배분되었지만, 2003년에는 이 비율이 64.8%로 감소했고, 나머지 35.2%는 평가를 통해 선발된 대학에 목적지원을 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특히 1993년까지는 주로 교사 신축 등 물리적 기반에 집중된 예산이었지만, 1994년 이후부터는 교육 개혁과제의 성과를 중심으로 한 평가 기반 지원이 강화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변화는 대학들에게 자율성을 부여하는 동시에 경쟁을 유도했다. 이전까지 대학의 서열은 단순히 얼마나 우수한 학생이 입학했는지에 따라 결정되었다. 대학 입시에서 학생이 하나의 대학만 지원할 수 있었던 시절, 입시 점수만으로 대학의 위상이 구분되곤 했다. 그러나 1995년 5.31 교육개혁 이후, 정부는 대학에 대한 규제를 점차 완화함과 동시에 그 자율성을 활용해 각 대학이 강점 분야를 특성화하고 교육의 질을 제고할 수 있도록 유도했다. 이는 곧 경쟁을 통해 대학이 성장하도록 만드는 정책 방향이었다.
이 같은 변화는 당연히 모든 대학이 환영한 것은 아니었다. 평가를 통한 재정지원은 학문과 연구의 공간으로 여겨지던 대학을 사업체처럼 취급하는 것이라는 비판도 존재했다. 지식을 생산하는 상아탑이 정부의 평가 틀 안에서 예산을 배정받는 방식은 일부 교수들과 대학들 사이에서 거부감과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이러한 비판은 지금까지도 재정지원 사업이 추진될 때마다 반복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학에 대한 평가 기반 재정지원 패러다임은 한국 고등교육의 구조를 변화시키는 결정적인 전환점이 되었다. 자율성과 경쟁이라는 두 축은 현재도 고등교육 정책의 핵심 원리로 작용하고 있으며, 대학들은 여전히 그 사이에서 균형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앞으로 이 체제가 어떻게 변화하고 진화할지는 한국 고등교육의 미래를 결정짓는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