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외국인 친구와 나눈 대화 중 이런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만약 지금 살고 싶은 곳을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다면 어디를 고르겠니?” 나는 망설임 없이 “팔로 알토”라고 답했다. 그 말이 나오자, 내 머릿속엔 20년 전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그때 나는 세 살, 다섯 살 아이들을 데리고 샌프란시스코 인근의 작은 도시 팔로 알토에서 1년 8개월간 살고 있었다. 조용하고 지적인 분위기, 오래된 나무들, 그리고 어디선가 느껴지는 고요한 기품. 당시에는 몰랐다. 이 도시가 이후 세계적인 영향력을 가진 상징적인 장소가 될 줄은.
팔로 알토는 스탠퍼드 대학과 실리콘밸리의 수많은 테크 기업들이 함께 자리한 도시다. 하지만 내가 기억하는 팔로 알토는, 구글이나 애플 본사가 있는 곳으로 유명하지만 다른 대학도시들과 마찬가지로 도시 전체가 하나의 열린 캠퍼스 같았던 곳이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건 도시 곳곳에 자리한 나무들이었다. 팔로 알토에서는 길 한가운데에도 나무가 있고, 그 나무를 중심으로 도로가 휘어질 정도였다. 도시 설계자들이 나무를 베지 않고 어떻게든 살리려 했던 배려가 도시 전반에 깃들어 있었다. ‘팔로 알토(Palo Alto)’라는 이름 자체가 스페인어로 ‘큰 나무’를 뜻한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사람이 느끼는게 비슷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팔로 알토의 중심에는 스탠퍼드 대학이 있다. 지금은 세계적인 명문대학으로 누구나 알고 있지만, 그 시작은 아픔과 헌신에서 비롯되었다. 1876년, 캘리포니아 주지사였던 릴런드 스탠퍼드는 샌프란시스코 인근 지역에 펠로 알토 말 목장을 설립했다. 이후 약 8,180 에이커, 평수로는 1,000만 평이 넘는 땅에 거대한 목장을 운영하게 되는데, 이 목장이 오늘날 스탠퍼드 대학의 캠퍼스가 되었다. 릴런드 스탠퍼드는 16세가 되기 전에 장티푸스로 세상을 떠난 외아들 릴런드 주니어를 기리기 위해, “캘리포니아의 모든 젊은이들을 우리의 자식으로 삼자”는 마음으로 대학을 설립했다.
책에서 본 이야기 중엔 스탠퍼드 대학이 한국전쟁 시기 군수산업과 기술 개발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성장의 기회를 맞았다는 분석도 있었다. 설립자인 릴런드 스탠퍼드 사망 이후, 그의 부인과 총장 간의 권력 다툼, 그리고 끝내 밝혀지지 않은 독극물 중독으로 스탠퍼드 부인이 사망했다는 일화까지—이 대학의 역사에는 단순한 영광뿐 아니라, 인간의 욕망과 슬픔이 함께 얽혀 있었다.
나는 그곳에서 지낸 1년 8개월 동안, 문득 알라딘의 지니가 있다면 스탠퍼드 대학을 통째로 떼어 한국으로 옮겨오고 싶다는 상상을 하기도 했다. 그만큼 이 학교의 캠퍼스와 조경, 그리고 도서관에서 느꼈던 경외감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도서관 안의 고요하고도 웅장한 분위기 속에서, 나는 학문이라는 것이 얼마나 고귀하고 숭고한 일인가를 처음으로 온몸으로 느꼈다. 단지 공부를 하는 공간이 아니라, 지혜와 정신이 축적된 신전 같은 곳이었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났다. 한국의 대학들도 눈부신 발전을 이뤄냈다. 연구와 교육, 캠퍼스 시설까지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성장했다. 언젠가 빠른 시일안에 우리나라에도 스탠퍼드처럼, 잘 정돈된 자연과 학교시설안에서 다양한 기술기업들과 협업하여 새로운 기술과 기업을 창조해내는 대학이 생겨날 것으로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