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ain Korea 21 : 고등교육 혁신의 시작
누가 “BK21 (Brain Korea 21)“이라는 이름을 처음 지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보다 더 잘 지은 이름은 없을 것이다. 21세기의 한국 두뇌를 양성하겠다는 의지를 담은 이 사업명은 단순한 표현을 넘어, 국가의 미래를 설계하는 청사진이었다. 모스크바에 위치한 러시아 국가과학재단 건물 꼭대기에는 금색 직사각형 조형물이 미로처럼 얽혀 있는데, 이는 인간의 두뇌를 형상화한 것이라고 한다. 아마도 러시아가 미국과의 기술패권 경쟁 속에서 ‘고급 두뇌’의 중요성을 강조한 상징물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BK21 사업은 1999년 국민의 정부 시절 시작되었으며, 한국 정부가 고등교육 분야에 대규모 투자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최초의 사업으로 평가된다. 그 이전에도 국공립대학을 중심으로 시설 확충이나 교육 기회 확대를 위한 지원 사업들이 존재했지만, 주로 학교 규모에 따라 예산을 배분하는 방식이었다. 반면 BK21은 우수한 연구 역량을 가진 대학을 선별하여 연구개발, 연구성과의 상업화, 학문후속세대 양성을 지원하는 장학금 및 해외 연구활동 지원 등 보다 전략적이고 집중적인 지원을 시작했다.
당시 김대중 정부는 단순히 기술을 따라가는 국가가 아니라, 기술발전을 선도하는 국가로 도약하자는, 당시로서는 대담한 비전을 세웠다. 이에 따라 1999년부터 매년 약 2,000억 원 규모의 예산을 72개 대학, 438개 연구단에 지원하기 시작했다. 초기에는 서울대학교를 세계적 수준의 대학으로 육성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으나, 대규모 지원을 앞두고 타 대학들의 반발이 이어지면서 정부는 수혜 대상을 서울대 중심에서 전국 주요 대학으로 확대하게 되었다.
BK21 이후 한국의 연구성과는 눈부신 성장을 거듭했다. SCI급 논문 수는 1998년 세계 18위에서 2017년 12위로 상승했으며, 특허 출원은 세계 5위, 전일제 연구원 수는 세계 6위에 오르는 성과를 이뤘다. BK21 사업은 2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네 차례에 걸쳐 단계적으로 진화해 왔다. 1단계에서는 연구중심대학 체제로의 전환을 위한 학부 정원 감축과 연구비 중앙관리제를 도입했고, 2단계에서는 지식이전 세계 10위권 진입을 목표로 했다. 3단계는 글로벌 연구역량 강화에 초점을 맞췄으며, 현재 진행 중인 4단계 사업은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선도할 첨단기술 인력 양성에 주력하고 있다.
BK21의 성공은 미국, 독일, 일본 등 여러 국가의 전문지에서도 높게 평가되었고, 국내 연구자들 역시 대체로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사립대학에도 동일한 조건으로 지원이 이뤄지면서 지방 국립대학이 우수 인재를 수도권 사립대학에 빼앗기는 부작용이 있었다는 지적도 존재한다. 1990년대 말까지만 해도 경제적 여건과 시설환경 등을 고려하여 지역 대학에 진학하던 우수 인재들이 BK21 이후 수도권 대학으로 집중되면서, 수도권 대학이 ‘블랙홀’ 역할을 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BK21은 막대한 예산과 연구 인력 확보 여부가 연구실 존속을 결정짓는 문제였기에, 사업 선정 과정에서 매번 크고 작은 논란이 있었다. 그러나 현재는 비교적 안정된 절차를 통해 연구단을 선발하고 있으며, 선정된 연구단들은 국가의 지원 아래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불확실한 경제 상황 속에서도 한국 정부는 미래를 위한 대담한 투자를 결정했고, 이는 한국이 지식강국으로 도약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