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80년: 세계가 놀라는 교육정책이야기(23)

1997_세계에서 가장 컴퓨터를 잘 사용하는 국민 만들기 프로젝트

by Clara Shin

외국인들이 한국에 와서 가장 놀라는 것 중 하나는 발달된 대중교통과 안전한 밤거리, 그리고 어디에서든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와이파이 환경이다. 오늘날 한국에서는 카페든 지하철이든 공공기관이든 거의 모든 공간에서 무선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단지 기술의 발달 때문만은 아니다. 한국 사회가 오랜 시간에 걸쳐 디지털 인프라를 체계적으로 구축하고 이러한 혜택이 모든 국민들에게 향유될 수 있도록 추진된 다양한 정책이 기여한 바가 크다. 한국은 언제부터 이렇게 인터넷 강국이 되었을까? 언제부터 우리는 와이파이 없이는 불편함을 느끼는 민족이 되었을까?


한국이 정보통신기술 분야에서 세계를 선도하게 된 배경에는, 1997년 말 시작된 초중등학교 교육정보화 종합계획이라는 정책적 기반이 있다. 당시 정부는 2002년까지 전국의 모든 학교에 교육용 PC를 보급하고, 각 교실에 멀티미디어 기자재를 설치하며, 학내 전산망을 구축하겠다는 명확한 목표를 설정하고 이 목표를 대부분 완수하였다.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인터넷을 통해 문서를 주고받는다는 것은 신세계와도 같은 일이었다. 지금은 너무나 당연하게 이메일과 클라우드 서비스를 활용하지만, 불과 30여 년 전만 해도 교사나 학생 모두에게 그것은 낯선 일이었다. 당시만 해도 인터넷을 활용하는 교사는 소수였고, 대부분은 수작업과 아날로그 방식에 익숙해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모든 교사에게 컴퓨터를 지급하고, 행정 업무뿐 아니라 수업도 컴퓨터를 활용하도록 시스템을 전환했다. 정책은 급진적이었다. 당연히 초기에는 많은 반발이 있었다. 새로운 기술을 익혀야 하는 데서 오는 부담, 학교 내 컴퓨터 도난 사고나 잦은 고장으로 인한 혼란, 그리고 현실과 동떨어진 정책이라는 비판도 있었다. 하지만 정부는 발생하는 문제들에 대응해 가면서 교육정보화 추진 계획을 대부분 완수하였다.


이후 2001년부터는 지식정보화 사회에 부응하기 위한 교육여건 개선사업이 시작되었다. 이 사업은 2003년부터 12조 2,797억 원이라는 대규모 재정을 투입해 학급당 학생 수를 줄이고, 정보화 기반을 확충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점차적으로 교육 현장에서 컴퓨터는 단순한 기기가 아니라 학습과 소통의 도구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그 덕분에 집에 컴퓨터가 없던 학생들도 학교에서 자연스럽게 컴퓨터를 접하고, 직접 조작해 보며 자라날 수 있었다. 이들은 이른바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로 성장했다. 교사들에게 정보화 연수가 제공되고 학생들에게는 초등학교 1학년부터 컴퓨터 교육을 받고, 고등학교에서 시행되던 정보 소양 인증제가 중학교까지 확대되면서 한국 학생들의 디지털 역량은 눈에 띄게 향상되었다. 민간 분야에서도 변화가 일어났다. PC방이라는 독특한 문화가 전국으로 확산되며 컴퓨터는 일상의 필수품으로 자리 잡았다.


이러한 교육정보화 정책의 배경에는 김대중 대통령의 철학이 자리하고 있었다. 김 대통령은 감옥에서 읽은 앨빈 토플러의 『제3의 물결』에 깊이 감명받았다. 그는 대통령에 취임한 후, 토플러를 한국으로 초청해 미래 전략 보고서를 직접 요청했다. 이 보고서에서 토플러는 한국이 기술을 단순히 따라가는 나라가 아니라, 지식을 선도하는 국가로 발전할 것인지를 선택해야 하는 시점에 와있다고 조언하였고 한국은 그의 조언에 적극적으로 응답하였다.


한국은 이제 인공지능(AI) 분야에서 세계 Top 3 선도국가 진입을 목표로 삼고 있으며, 그에 맞는 인재양성 계획도 본격적으로 실행되고 있다. ‘세계에서 컴퓨터를 가장 잘 사용하는 국민’이라는 당시 불가능할 것 같은 목표는 현실이 되었다. 이는 체계적인 정책과 정부의 교육투자에 대한 대담한 결정, 우수한 현장교사들의 선도, 국민의 열린 수용성이 만들어낸 역사적 성과라고 생각하고 한국이 준비하는 앞으로 다음 단계의 도약에 시사점을 주고 있다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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