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80년 : 세계가 놀라는 교육정책이야기(28)

해외 유학정책의 변천: 한국의 도전과 선택

by Clara Shin

한국의 해외 유학 정책은 국가의 발전과 국제 경쟁력 확보라는 시대적 과제와 함께 진화해 왔다. 해방 이후인 1949년, 이승만 대통령의 주선으로 한국인 유학생 30명이 미국으로 건너간 것이 한국 유학정책의 출발점이었다. 이승만 대통령 자신이 미국에서 학사, 석사, 박사 학위를 모두 받은 인물이었기에, 세계의 발전상과인재양성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절감하고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1950~60년대, 한국은 매우 열악한 경제 여건 속에서도 미국과 독일 등의 선진국에 유학생과 연수생을 파견했다. 당시 2만여 명에 달하는 학자와 대학원생들이 선진 문물을 배우기 위해 파견되었고, 이들은 훗날 귀국하여 1960년대 경제개발계획을 주도하는 핵심 인력으로 활동하게 된다. 특히, 자비 유학생도 일정 수준의 학업능력을 갖추어야만 출국이 가능하도록 관련 법령을 정비하는 등, 유학정책은 체계적인 방향성을 띠기 시작했다.


이후 박정희 정부는 해외유학을 억제하고, 오히려 해외에 있는 한국인 학자들을 국내로 불러들이는 정책을 폈다. 대표적인 예가 한국과학기술원(KIST)의 설립 과정으로, 당시 연구원에게는 서울대 교수의 3배에 해당하는 파격적인 보수가 지급되었고 이는 대통령보다 높은 보수였으나, 미국의 처우에 비하면 여전히 30% 수준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이들을 설득했고, 결과적으로 ‘브레인 드레인’을 ‘브레인 게인’으로 전환하는 데 성공했다.


1980년대 신군부 시기에는 해외여행 자유화와 함께 해외유학 규제가 완화되었다. 특히 미국으로 유학한 인재들은 귀국 후 삼성, LG, 현대 등 글로벌 기업에서 핵심 역할을 수행하게 되었다. 2000년대 초반까지 서울대학교는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졸업생 수가 가장 많은 대학으로 꼽힌다. 이후 이 순위는 중국과 인도 학생들로 넘어가게 된다.


그러나 증가하는 해외유학은 유학수지를 악화시키는 결과로 이어졌다. 또한 조기유학 수요의 증가로 ‘기러기 아빠’ 현상이 사회문제로 대두되었고, 이에 따라 정부는 제주영어교육도시와 국제학교 설립 등을 통해 국내에서의 대안적 교육환경을 제공하고자 했다.


이와 동시에 한국의 고등교육 기관들이 국제 경쟁력을 갖추기 시작하면서, 한국으로 오는 외국인 유학생 수도 빠르게 증가했다. 2000년대 초반까지는 해외로 나가는 학생 수(아웃바운드)가 월등히 많았지만, 2022년을 기점으로 들어오는 유학생 수(인바운드)가 이를 추월하였다. 최근 한국교육개발원에 따르면 2024년 기준 한국의 외국인 유학생 수는 208,962명이며, 해외로 나간 한국인 유학생 수는 약 176,000명이다. 이는 한국이 순수 ‘유학수지 흑자국’이 되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전환점은 한국의 유학정책이 단순한 인재 양성을 넘어 교육산업의 한 축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유학은 더 이상 한쪽 방향의 흐름이 아니라, 글로벌 경쟁과 협력 속에서 인재가 자유롭게 이동하며 각 국가의 성장에 기여하는 복합적 현상이 되었다. 한국은 유학을 통해 인재를 키우고, 또 이들을 다시 불러들이며 국가적 자산으로 활용한 대표적인 성공 사례라 할 수 있다.


앞으로도 한국은 유학생 유치와 한국 유학생 파견이라는 이중 정책을 균형 있게 운영함으로써, 국제적 교육 허브로서의 위상을 공고히 할 필요가 있다. 특히, 단순한 양적 성장보다는 질적인 향상과 함께, 글로벌 인재가 한국을 미래의 교육 파트너로 신뢰할 수 있도록 제도적 기반을 지속적으로 강화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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