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운 뒤 돌아와 만들고, 다시 세계를 불러들이다
오늘날 미국의 연구중심대학은 세계 고등교육의 기준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이 체제가 처음부터 미국 내부의 역량만으로 형성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미국 대학의 출발점에는 하나의 분명한 인식이 자리하고 있었다. “지금의 우리는 아직 충분히 강하지 않다.” 이 인식은 미국을 세계로 내보내는 결정으로 이어졌고, 그 선택이 결과적으로 미국 대학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19세기 중반까지 미국의 대학들은 대체로 교양교육 중심의 소규모 컬리지였다. 학문은 가르쳤지만, 체계적인 연구를 수행하는 기관은 아니었다. 박사제도도, 연구중심대학도 아직 자리 잡지 못했다. 이 한계를 가장 먼저 인식한 것은 미국의 젊은 학자들이었다. 이들은 당시 세계에서 가장 앞선 연구대학 체제를 갖추고 있던 독일로 향했다. 기록에 따르면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까지 약 1만 명에 이르는 미국인 학자들이 독일 대학에서 수학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유학은 국가가 조직한 파견 사업이 아니었다. 전공과 시기를 정하는 것도 개인의 선택이었고, 재원 역시 개인과 대학, 교회, 그리고 점차 등장한 민간 재단의 지원에 의존했다. 중요한 점은 이들이 독일에서 단지 새로운 지식을 배운 것이 아니라, 연구가 대학의 중심 기능이 되는 방식 자체를 체득했다는 사실이다. 세미나 중심 수업, 박사학위의 연구 요건, 교수의 연구자 정체성은 이후 미국 대학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씨앗이 되었다.
독일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학자들은 기존 대학의 틀 안에서 개혁을 시도하기보다, 새로운 유형의 대학을 설계하는 쪽을 택했다. 그 상징적 사례가 1876년 설립된 **존스 홉킨스 대학교**였다. 이 대학은 설립 단계부터 연구와 대학원을 중심에 두었고, 독일식 박사제도와 세미나 교육을 본격적으로 도입했다. 뒤이어 설립된 **시카고 대학교**는 이 모델을 더욱 공격적으로 확장하며, 연구중심대학이 미국에서도 성공할 수 있음을 입증했다.
이러한 변화는 기존의 엘리트 대학들에도 영향을 미쳤다. 하버드 대학교, 예일 대학교, **프린스턴 대학교**은 원래 교양교육과 지도자 양성을 중시하는 컬리지 전통의 대학들이었다. 그러나 존스 홉킨스와 시카고의 성공은 연구중심대학이 새로운 표준이 되었음을 보여주었고, 이들 대학 역시 대학원과 연구 기능을 강화하며 방향 전환을 선택하게 된다.
미국 대학 발전의 중요한 특징은, 이 전환이 정부 주도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귀국한 독일 유학자들은 정부 관료 체계로 흡수되기보다, 대학이라는 제도 안에서 변화를 만들어 갔다. 민간 재단의 재정 지원은 연구소 설립과 대학원 확대를 가능하게 했고, 대학의 자율성은 유지되었다. 이렇게 형성된 연구중심대학은 국가의 하위 기관이 아니라, 독립적인 지식 생산 조직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이후 미국 대학의 경쟁력을 지속적으로 강화한 또 하나의 동력은 국제화 전략이었다. 미국은 어느 순간부터 더 이상 학자를 해외로만 보내는 나라가 아니라, 세계의 우수한 인재를 대학으로 끌어들이는 나라가 되었다. 외국인 유학생과 연구자는 미국 대학에서 연구 경쟁의 한 축을 이루었고, 이들은 대학의 연구 생산성과 국제적 네트워크를 동시에 확장시켰다. 국제화는 부수적인 정책이 아니라, 대학의 질을 끌어올리는 핵심 메커니즘으로 작동했다.
이 과정을 돌아보면 하나의 분명한 결론에 이른다. 미국 연구중심대학의 기초는 해외 유학자들에 의해 개편되었고, 그 성과는 다시 국제화 전략을 통해 견고화되었다는 점이다. 국제화는 대학이 이미 강해진 뒤에 덧붙인 장식이 아니라, 약했던 시절의 학습 전략이자 강해진 이후의 성장 전략이었다.
이제 이 논의는 한국 고등교육 국제화로 이어진다. 한국 역시 미국과 유사한 궤적을 이미 일부 밟아왔다. 국내 연구 역량이 충분히 축적되기 이전, 수많은 한국의 젊은 학자들이 해외, 특히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고, 이들은 귀국 후 한국 대학의 연구 기반을 빠르게 끌어올리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흥미로운 사실은 2000년대 초반까지 서울대학교가 미국 대학에서 가장 많은 박사학위 취득자를 배출한 해외 대학 가운데 하나였다는 점이다. 이는 한국이 단지 미국 고등교육의 수혜자였을 뿐 아니라, 미국 대학의 연구와 교육 현장에 지속적으로 기여해 온 파트너였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기도 하다.
이제 과제는 분명하다. 미국 대학이 그랬던 것처럼, 한국 대학도 ‘보내는 국제화’에서 ‘받는 국제화’로 전략의 중심을 옮길 필요가 있다. 단기적인 유학생 수 확대나 재정 지표를 넘어, 세계 각국의 우수한 젊은 인재들이 한국 대학에서 공부하고 연구하며 성장하도록 만드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이는 한국 사회 전체에 학습 효과를 남길뿐 아니라, 이들이 장차 각국의 외교·경제·과학기술 분야에서 한국과 연결된 인적 자산으로 작동하는 장기적 효과를 낳는다. 미국 연구중심대학의 사례가 보여주듯, 국제화는 대학의 질을 높인 결과가 아니라, 질을 높여온 과정 그 자체였다. 한국 고등교육 국제화 역시 이 점에서 다시 출발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