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향기로운 사람

by 이혜연
향기로운 사람

어렸을 때 주일학교에서 들은 설교 중에 지금까지도 반추하고 스스로를 가늠해 보는 말씀이 "향기로운 사람이 돼라'이다. 그 이후부터 항상 혼자 있을 때 나는 향기로운 사람인가, 어떤 향이 나는 사람이길 원하는가, 멀리 가고 오래 남을 수 있는 기억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히아신스의 향이 베란다를 지배하다가 아쉽게 끝나버린 후 조롱조롱 작은 꽃대가 올망졸망 올라오더니 라일락이 피었다. 마당에 5년 된 라일락은 이제 어엿한 나무가 되었다. 해마다 호랑나비 애벌레가 이파리를 잔뜩 먹어버리는 바람에 꽃이 진 후 더 세심히 살펴줘야 하는 아이다. 꽃이 피는 시기보다 더 긴 기다림의 시간이 있지만 그마저도 그날이 오면 온 동네를 물들일 향기가 기다려지는 꽃이다. 그래서 작년에 작은 화분으로 하나 더 들여서 이번에는 분재를 만들어보려고 하고 있다. 작은 베란다에 놓고 둥치를 굵게 키워보고 싶다. 조롱조롱 예쁜 꽃망울들을 더 많이 달리게 하고 온 집안에 예쁜 그 향기를 채워 나도 그런 사람으로 물들고 싶다.


시골에서 나물을 캐러 갔다가 만난 야생동물이 있었다. 털이 모두 숭숭 빠져버렸고 눈에 눈곱이며 삐쩍 마른 채 움직이지도 못한 채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안쓰러운 마음에 아이들에게 물과 햄을 가져오라고 해서 물도 줘보고 햄도 뜯어 주었지만 먹지를 못했다. 안타깝지만 포기해야겠다고 생각하고 돌아서는데 아이들이 자기들이 조금 더 줘보겠다며 사정을 했다. 야생에 있었던 터라 가까이 가지 않게 주의를 시키고 조금만 더 보다가 오라고 하고 집으로 왔다. 한참 후에 아이들이 헐레벌떡 들어오더니 그 아이가 햄을 먹고 걸어서 집으로 갔다며 신나 했다. 어떻게 기운을 차렸는지 궁금해했더니 아이들 왈.

"엄마 내가 추울까 봐 잠바를 덮어줬어.

그리고 햄을 아주 작게 더 잘라서 조금씩 줬더니 먹더라고"

그렇게 말하는 아이의 얼굴에서 따뜻한 웃음이 번진다. 그러면서 둘째를 가리키며

"쟤는 왜 너는 엄마가 안 오느냐고 울었어."

감수성이 풍부한 둘째는 혼자 떨고 있는 조그만 아이가 엄마도 없이 그렇게 쓰러져가는 게 못내 불쌍했나 보다. 내가 간 후로 엉엉 울면서 했다는 말이 마음을 짠하게 했다. 어쨌든 걸어서 다시 산으로 갔다고 하니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온전치 못한 몸으로 잘 버텨내고 있을까 생각하니 더 돌봐주지 못한 게 마음을 아프게 한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오래된 것들을 연민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