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부는 날에는

by 이혜연
바람 부는 날에는

애써 모아놓은 기대가 바람에 사정없이 흔들리는 봄날입니다. 빨강, 노랑, 하얀색으로 이렇게 예쁘게 피워놓았는데 거친 바람에 여유롭게 감상할 수가 없습니다.


환절기인 데다 날씨까지 변덕이 많으니 주변에 감기환자가 많이 있는듯싶습니다. 신랑은 2주째 감기로 고생을 하고 있는데 지난 몇 달간 야근을 많이 해서 체력이 부족한 것 같아 한의사 친구에게 보약을 주문했습니다. 스물다섯에 만나 3년을 함께 살면서 같이 뒹굴고, 여행도 가고, 봉사활동도 했던 친구여서인지 일 년에 몇 번 안 되는 통화만으로도 그때의 감정이 올라옵니다.


셋이서 거실에서 일본 애니메이션도 보고, 만화책을 가득 쌓아놓고 읽으며 늦게 읽는 저를 타박하면서 보낸 시간이 지금의 친밀감을 만들었습니다. 한의대에서 기타와 전자피아노를 연주하는 밴드 활동도 했던 친구 부부는 음악에 대한 조예도 깊어서 제가 모르던 분야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해 주던 생각도 납니다.


가장 힘들었을 때, 바람 속으로 뛰어들어 온몸이 다 산산으로 흩어져 산화되고 싶은 시기에 집주인과 세입자로 만나 쌓아온 인연. 언제나 나를 지지한다고 말해주는 사람들. 그때 들었던 보험에 비보험자로 친구 이름을 써넣었을 정도로 좋아했던 사람들입니다.


신랑의 보약을 주문했더니 나는 왜 안 먹냐고 해서 너무 튼튼해서 그렇다고 하니 웃으며 쌍화탕 좀 넣었으니 피곤할 때 마시라고 하더라고요. 각자 가정을 이루고, 지역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데다 바쁜 사역을 하는 친구를 자주 만나지는 못하지만 그 친구의 이름을 낮게 불러보는 것만으로도 그때의 감사함, 믿음, 함께 있음으로 느꼈던 안도감들이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마음을 가득 채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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