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서 있는 것들

by 이혜연

"60 돼서 50대 후반이 돼서 나는 뭘 하고 살아야 하지, 어떻게 살아야 하지하는 것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물어봐야 하는 것, 이것은 상당한 비극이다. 이것은 자기를 한 번도 돌아보지 않은 것이다. 한 번도 자기를 궁금해해보지 않은 것이다." ---최진석 <삶의 실력, 장자>


50대 초반인 내 친구들과는 자주 만나지 못한다. 전화통화는 일주일에 한 번씩 할 때도 있고 바쁘면 2주에 한 번으로 넘어갈 때도 있다. 경제적으로 안정된 친구들이지만 스스로 어떤 꿈을 이루고자 하는 의욕은 한 풀 꺾여있는 친구들도 있다. 유순하고 부드러운 친구들은 야생마 같은 내 행보를 항상 위태롭게 보곤 했었다.


12월 31일 태백산 야간 산행을 계획했을 때, 지리산 둘레길을 혼자 걷는다고 했을 때, 서른다섯 혼자 호주에 가서 살아보고 싶다며 훌쩍 떠났을 때, 시골에서 된장, 고추장 담그면서 그림을 그리며 여생을 보내고 싶다고 무작정 시골로 내려가버렸을 때마다 왜 이렇게 열심이냐며 핀잔을 주곤 했었다. 뭐든 생각나면 실천해 봤고(공부는 안 그랬지만..) 도전할 땐 미친 듯이 하는 성격을 태어날 때부터 타고난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어릴 때 내 모습을 반추해 보면 우선 겁이 엄청나게 많았다. 밤에 마당을 가르지도 못할 정도였고, 다른 사람에게 싫은 소리도 못해서 잘못하지 않았어도 먼저 사과해야 잠이 올 정도로 소심했었다. 그러다 17살에 자취를 하게 되면서 스스로를 지킨다는 것의 경계석을 세우게 되었고, 경제적으로 독립하게 되면서 스스로 서는 인간에 대해 고민하고 하나씩 실천하게 된 것 같다. 경제를 공부하고 거절하는 방법과 홀로 서 있으면서 외롭지 않은 나를 세우고자 노력했던 때였던 것 같다.


그러다 강도를 만나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 섰을 때 비로소 산다는 것에 대해, 살아있다는 것에 대해 온전히 아파하고 죽음보다 무서운 두려움과 반복된 슬픔을 곱씹으며 어두운 시간을 보낸 후에 그 속에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 것 같다. 그 어두운 터널을 지내는 3년 동안 누구보다 아팠고 힘들었지만 더 이상 어떤 누구도 아닌 나 자신으로 생을 마감할 것이라고 다짐했었던 것 같다. 그런 시간이 없었다면 최진석 교수님의 말씀처럼 50이 넘은 지금까지도 뭘 하며 살아야 하나, 허무한 고민만 하다 소파에 기대어 의미 없이 채널을 돌리며 앉아있는 하루를 살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니 내게 주신 고난을 감사해야지. 체력이 있을 때, 넘어져도 일어설 수 있을 때, 그때 주신 상처가 아물어 새살이 돋고 근육이 되어 생을 즐기며 살 수 있게 됐음을 고백하며 오늘도 감사한 하루가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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