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금요일

by 이혜연

사람들은 다양한 이유로 하루를 고민한다. 뭘 먹을까, 누굴 만날까, 어떻게 시간을 보낼까 하는 것들은 끊임없이 반복되고 고심하는 일인데도 자고 나면 같은 생각에 또 시간을 허비한다. 새벽녘 잠이 깰 때 '오늘은 무엇을 그릴까'하는 걱정이 하나 추가되는 건 나의 특별한 하루가 시작되었다는 출발점이기도 하다. 그것은 먼 훗날 이 시간들이 정말 의미 있는 일이 될까라든지, 더 높은 이상을 이루겠다는 욕심의 한 부분이라던지 혹은 세상에 나를 알리고야 말겠다는 욕심보다 더 원초적인 물음이다. 어떻게 그릴 것인가, 무엇을 담을 것인가, 무엇을 표현할 것인가..


아이들이 요란하게 등교한 후에 덩그러니 남은 공간과 일시적으로 멈춘 시간 사이에 껍데기만 둥둥 진공상태로 떠있는 기분이었다. 거기에 제법 굵게 떨어지는 빗소리가 아직 높은 곳에서 끌어내리는 중력의 영향을 받고 있는 지구에 남아있음을 알려주는 신호탄이 되어주고 있었다. 여러 가지 갱년기 증상을 앓고 있지만 그중에 가장 괴로운 건 잠을 깊이 못 잔다는 것이다. 새벽에 자주 깨거나 혹은 잠이 잘 안 오기도 했다. 그럴 때 주로 하는 고민이 무엇을 할 것인가이다. 그림을 그리는 것부터 다른 사업을 구상하거나 아이들의 교육과 관련된 일정들도 무작위로 떠오른다. 그러다가 에세이를 들춰보며 억지로 잠을 청해 보기도 하지만 아침이면 머리가 무거워지는 건 어쩔 도리가 없다. 신랑은 커피를 끊고 양질의 잠을 자야 한다고 하지만 유일하게 마시는 것이 커피이니 도저히 그걸 끊어낼 용기를 내지 못하고 있다. 더군다나 이렇게 아름다운 비가 내리는 날에 조금은 서늘한 공기에 식혀서 마시는 커피를 즐기지 못한다면 하루를 공허하게 흘러 보내는 것만큼 의미 없는 일이 될 것이다.


그러니 마셔야지. 혹자는 인생처럼 쓴맛이 커피라지만 여전히 알싸하고 쌉쏘롬한 향으로 오늘이라는 현실을 마주하게 해주는 그 잔을 높이 들어 비 오는 금요일을 즐겨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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