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살을 훤히 드러내도 너의 열기를 이길 수가 없다. 굵은 구름을 끌고 다니다 변덕스럽게 소나기를 뿌려대기도 하고, 몸을 드러내듯 마음의 허기까지 바싹 말려대는 통에 할 일 없는 오아시스를 꿈꾸게도 한다. 친애하는 여름아. 나는 네가 두려우면서도 네가 키워낼 모든 작물들의 성장이 필요하다. 가을의 풍요로움이 네게서 영글고 네가 주는 갈증이 과일의 당도를 높인다는 것도 알고 있다. 고맙고 감사한 일인데도 지금 당장의 갈증에 숨을 쉬기 어려워 네가 두려우지기도 한다. 이럴 땐 뒤도 돌아보지 않고 너로 가득한 바다로 떠나고 싶어진다. 하지만 검은 도로를 따라 달리다 보면 일상의 끝은 더운 여름 한가운데서 인질처럼 붙잡힌 도시 안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숨 막히는 사람들 틈에 끼여 흐느적 녹아내리며 살게 된다.
당산에서 합정으로 가는 길
그렇게 오늘도 앞선 타인의 뒤꽁무니를 아무 생각 없이 따라가다가 갑자기 탁 트인 시야에 거대한 도시가 한눈에 들어왔다. 마치 수상도시처럼 도시가 물 위에 기둥을 세우고 서 있는 모습이 이질적으로 느껴진다. 그 풍경만으로도 오늘 하루치 행복이 소복이 쌓이는 느낌이다. 거대한 저 물결을 따라 잠시 바다로 나아가본다. 지하를 벗어나 커다란 강 위를 달리는 열차 안에서의 2분이 반복되는 지루함에서 벗어나게 해 준다.
그냥 열차를 내리지 않고 끝까지 달려볼까 하는 생각을 하다가 환승하는 구간의 역사 안의 후끈한 열기에 다시 지하철을 탔다. 그리고 오늘치 할 일을 채우기 위해 달리며 언젠가 치기 어린 일탈을 꼭 해보리라 마음먹으며 다시 오늘을 살아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