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녘 발끝에 살짝궁 내려앉은 한기가 이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기분 좋은 소름이 노출된 피부를 저르르 울리며 잠에서 깨웠다. 공기가 시원해졌다. 일을 그만두고 나니 아침이 여유롭게 흘러갔다. 느리게 게으른 시간을 소파에서 나른하게 즐겼다. 서두르지 않고 그림을 그렸고 간만에 친구와 통화도 했다. 그렇게 오전이 흘러가고 혼자 점심을 먹고 식곤증으로 살짝 눈이 감기려는데 갑자기 창밖이 소란스럽다.
화아아아악!!
후두두두둑!!!
퉁퉁퉁퉁퉁!!!
비다!! 반가운 빗님이 꽹과리를 때리고, 장구를 두드리고 나발을 불면서 여름을 깨우고 있었다. 바싹 말라가던 초록들의 갈급하고 요란한 몸짓이 느껴졌다. 우산을 챙겨 아이들 마중을 가면서 발가락 끝에 닿았다 또르르 흘러가는 빗방울들을 보며 절로 웃음이 났다. 비가 온다는 것만으로도 불타는 여름, 잠깐의 휴식이 주어진 것만으로도 하루가 행복하고 즐거워진다. 무언가를 욕심부리지 않아도, 도달하고 싶은 곳이 멀다고 해도, 만나야 할 약속이 있지 않아도, 달궈진 지붕과 도로 위를 시원하게 식혀주는 빗님을 영접한 것만으로도 세상을 다 가진 아이처럼 두 팔을 활짝 벌려 오늘의 즐거움을 한 아름 안아 들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