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숲

by 이혜연


꿈꾸는 숲

생일잔치가 끝난 후부터 감기기운이 올라오더니 일요일 아침엔 몸이 천근만근입니다. 그렇게 고여있듯 침실에 묻혀있는데 잠깐 바깥에 다녀온 신랑이 바람이 너무 차갑고 사납게 불고 있다며 원래 가려고 했던 곳은 취소하고 드라이브나 가자며 남한산성으로 출발했습니다.


남쪽으로 내려가는 가을의 뒤꽁무니를 열심히 따라가다 보니 노랗고 빨간 잎들이 꽃잎처럼 도로로 쏟아져 휘날리고 있었습니다. 멀리 산등성이도 울긋불긋 물든 것이 빠르게 지나가는 계절을 실감하게 했습니다. 신랑이 더듬더듬 산 모퉁이를 돌고 작은 도로를 살피며 산길을 헤매다 옛날 과거시험을 보러 가던 '우리 옛길'을 찾아냈습니다.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폭에 폭신하게 깔린 낙엽길을 밟으며 걸으니 깊은 침묵 속으로 녹아들어 가듯 마음이 평온해졌습니다. 밤을 품던 밤송이들도 텅 비어있고 옆구리마다 잣을 달고 있던 잣도 여윈몸으로 땅 위를 뒹굴고 있었습니다. 겨울준비로 정신없던 산동 물들도 곳간을 제법 채웠는지 산은 꿈을 꾸듯 조용했습니다.


운전을 못하는 아내를 위해 주말엔 어디로든 떠나 주는 신랑 덕분에 이번 주도 계절을 피부로 느끼며 보냈습니다. 이제 새로운 한 주를 준비해야 하는 시간, 꿈을 꾸듯 편안한 가을 산처럼 평안한 밤 되시길 바랍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너를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