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걸을 때마다 생각하곤 한다. 나는 지금 어디까지 온 것일까, 가고 싶은 곳으로 방향을 제대로 잡고 가고 있는 걸까. 그러다 가끔 서두르고 싶고, 욕심내고 싶을 때 길에서 만나게 될 빨간불들을 생각하곤 한다. 아무리 빨리 달리고 싶어도 내가 견딜 수 있는 속도가 있다는 것을 상기하곤 한다. 때로 다른 사람들보다 앞선 것 같은 마음에 우쭐해질 때, 혹은 모두에게 뒤처져 홀로 남겨진 기분이 들 때, 주위에 아무도 없이 홀로 덩그러니 남겨진 것 같을 때도 그 길 가운데 신호등이 있음을 기억한다. 정거장마다 서야 하는 버스를 탄 사람도 뚜껑을 열고 빠르게 질주하는 스포츠카도 멈춤이 뜨면 신호가 바뀔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게 길 위의 인생인 것이다.
사계절 중에 겨울은 멈춰 기다려야 하는 때인지도 모르겠다. 찬바람에 밖으로 난 창을 닫고 조용히 안을 데우고 살피는 것, 그래야 땅도 쉬고 사람도 쉼을 얻어 봄이 오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아무것도 없는 대지 위를 박차고 올라가 푸른 싹을 낼 수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니 가을 앞에서 조금 더 따뜻해지자. 조금 더 움츠려 내 안을 보살펴주자. 그렇게 잠시 멈춰도 괜찮다고 나에게 말해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