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의 이유

by 이혜연


그림을 그릴 때 듣는 유튜브들이 있다. 과학과 철학, 그리고 책에 관한 이야기를 각각의 분야의 전문가들과 MC정용진 씨가 이야기형식으로 진행하는 채널이다. 오늘은 <철학> 편으로 마인드 마이너 송길영이사님과 철학교수님들이 나와 <AI와 인간의 구별이 가능한가>라는 주제로 토론을 벌였다. 시대가 바뀔 때마다 되풀이되는 물음에 대한 과거의 사례를 통해 지금의 혼란기에 던져지는 질문이 여전히 비슷하다는 것도 흥미로웠다.

그중에 <AI가 그린 그림이 작품인가>를 놓고 설전이 오가다가 결국엔 그리는 이의 과정과 의미부여 여부가 그림의 가치를 갖게 할 거란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매일 그림을 그리기로 한지 1384일이 지나가고 있다. 대략 3년 3개월이 흐르는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하루 하나씩 그림을 완성한 건 오늘을 사는 나를 기록하기 위함이었다. 시로 시작했던 글도 이젠 마치 일기처럼 오늘이 지나가기 전에 내가 살고 있는 하루를 적는 일로 바뀌었다. 무한한 동력을 가지게 된다면 사라질 일이 없는 AI와 인간인 내가 가지는 확연한 차이는 언젠가 나는 소멸을 할 거란 것이다.


유한한 생명을 가진 내가 무한한 꿈을 꾸며 깊고 깊은 우주 공간에 하나씩 사다리를 놓듯 그림을 쌓아가고 있다. 어떤 이들은 왜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일들에 저렇게 많은 시간을 투입하는지 의문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일을 알 수 없는 나는 오늘을 기록하고 완성하는 마침표로서 그림을 그리며 내 존재가 이 우주 어딘가 아주 작은 점만큼도 안 되는 시간을 울기도 하고, 사랑도 하면서 머물렀음을 증명하는 증표가 되어줄 것이라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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