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고 없이

by 이혜연


아이들과 주말마다 놀이동산이나 과학관을 가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요즘은 아이들이 교회를 다니게 되면서 부쩍 부부만의 시간이 늘어난 기분입니다. 아기새처럼 종종거리며 엄마뒤를 따르던 모습은 어디 가고 독립적으로 자신들만의 행사에 참여하는 모습이 벌써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나가려는 모습 같아 대견하면서도 섭섭한 마음입니다. 그래서 예고 없이 부부만의 시간이 많아진 일요일, 오래간만에 우리 둘이 좋아하는 메뉴로 점심을 먹어보려니 어떤 걸 먹을지부터 막막해집니다. 항상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들을 고려하던 날들이었는데 아이들 없이 우리들만의 취향이라는 것을 생각해 보니 특별할 게 없었습니다. 그래서 급하게 생각나는 대로 집 근처 유명한 즉석떡볶이를 먹고, 맛있는 빵집에서 갓 나온 식빵과 오이바게트를 사서 남편과 팔짱을 끼고 천천히 걸었습니다. 느리게 가는 오후가 생소하고 낯설었지만 예고 없이 내리는 눈도 구경하고, 소곤소곤 속삭이며 느긋하게 걷는 것도 좋았습니다.


겨울이 한창인데 꽃집엔 벌써 수선화가 피어있고, 목련도 다소곳이 꽃망울을 올리고 있는 모습이 봄을 살짝 맛본 것 같아 설레게 합니다. 그렇게 둘이서 짧은 거리를 데이트하듯 걷다가 함께 낮잠을 자면서 보내는 주말도 색다른 행복감을 줍니다. 산다는 것은 매번 반복되는 일상에서 느껴지는 소소한 기쁨에서부터 의미가 시작되는 것 같기도 합니다. 별것 아닌 점심, 특별할 것 없는 둘만의 낮잠이 하루를 더욱 풍부하게 하는 오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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