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국

by 이혜연


그야말로 눈이 지배한 세상이 되었다. 제주도에 도착했던 날부터 온천지를 지배하고 있던 봄이 순식간에 모든 걸 잃은 채 흩어져버렸다.


노란 꽃대를 활짝 연채 왕관을 쓴 여왕처럼 도도하던 수선화는 눈 속에서 하얗게 얼어가고 있고, 여린 봄처녀 같던 유채꽃 아가씨들은 시련당한 것처럼 고개를 숙였다. 붉디붉은 동백은 피눈물을 흘리듯 하얀 땅 위로 뚝뚝 떨어졌고 그 걸음 끝으로 먼저 온 봄들이 도망쳐버렸다.


하늘이 손바닥 뒤집듯 계절을 바꿔버렸지만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저 견디고 기다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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