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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혜연 Dec 26. 2022

환희


바닷가 조약돌

파도 소리로 울고


산에 산에 돌멩이

바람 소리에 깎인다


울 엄마 지나간

밭자리

자갈이 그득그득


흙고르고 씨 뿌리는

봄이 오면


지천에

엄마가 지나간 자리

생명들이 자란다



산속에서 맞이하는 아침은 괜스레 설렙니다.

조금만 나서면 다양한 새들의 소리로 숲에 얼마나 많은 이들이 함께

아침을 맞이하고 있는지 알게 되거든요.

방갈로에서 일어나 둘째 아이와 아무도 걷지 않은 고요한 아침을 숲에서 맞이했습니다.

발밑의 눈들은 쌀가루처럼 보드랍고 사드락 사드락 소리를 냅니다.

까마귀가 울더니 딱따구리 세 마리가 간격을 두고 나무를 난타합니다.

작고 귀여운 지빠귀가 어디서 노래하는지 가벼운 고음으로 존재를 드러냅니다.

아직 여리고 작은 둘째의 손은 앙증맞게 제 두터운 손 안으로 쏙 들어와

아침의 노래들이 펼쳐진 겨울 길을 함께 걷습니다.


아직 겨울이 한창인데 새해가 코앞이어서인지 봄이 기다려지기도 합니다.

예전엔 이런 농한기에 시골에서 여러 가지 부업을 했습니다.

작은 방 가득 솜 고르기, 대나무 돗자리 짜기, 알밤 까기 등등.

그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부업은 대나무 돗자리 짜기입니다.

작은 대나무 하나하나를 낚싯줄에 위, 아래를 맞춰 끼워야 하는데

중간에 그림까지 넣어야 하는 고난도 작업이었습니다.

하나를 틀리면 쭈르륵 지금까지 했던걸 다시 풀어내야 하니

그림을 넣을 땐 집중할 수밖에 없었죠.

하나를 끝내면 또 하나가 들어와서 겨울 내내 대나무 돗자리로 씨름하던 때가

생각납니다.

그렇게 겨울을 지내면 어느새 토방 가득, 따뜻한 햇살이 퍼지고

드디어 엄마가 들일을 준비해야 하는 봄이 오면

그때 대나무 돗자리 끼우는 일에서 해방이 됐던 기억이 납니다.


아이와 겨울 아침길을 걸으며 이렇게 한가하게 엄마와 걸어보던 때가

언제였나 싶습니다.

엄마는 농한기 내내 돗자리를 끼우시고 봄 햇살 퍼지는 기운이 나자마자

들일을 준비했었죠.

봄이 오기 전 항상 밭을 고르시던 엄마의 뒷모습이 봄과 함께 떠오릅니다.


새해 우리는 어떤 씨앗들을 뿌리게 될까요?

농한기인 이때에 우리는 어떻게 숨 고르기를 하면 좋을까요?

고요한 숲 속 길을 걷듯 천천히 자신의 마음속을 거닐어보는 날들이 되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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