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봄이 시작된 시간

by 이혜연
겨울, 봄이 시작된 시간


날아올 벌도 없고

살랑이는 나비의 날갯짓도 없는

차가운 겨울


동백은 어찌 이리

붉은 것일까


껴입은 듯

꽃잎을 한 장 한 장 겹쳐서

눈 속에서 더 따스하게

빛나는 꽃


흰 눈밭

붉은 여인 뒤로

봄이 벌써 서 있다


제주도로 놀러 간 지인의 인스타를 보다가 붉은 동백이 한창인 사진을 보았습니다.

회색빛이 차갑게 식어버린 도시 어디에도 봄은 아직인데

제주의 붉은 동백은 눈 속에서도 붉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너무 제주도에 가고 싶어 졌어요.

그냥 잠깐 동백 숲을 걸어보고 싶고 눈을 모자처럼 쓴 붉은 여인의 감촉을 느껴보고 싶었지요.

물론 못 가겠지만 가까운 꽃집에서라도 동백을 만져보고 싶어 졌습니다.


오늘은 결혼 안 한 남동생이 집에 놀러 온다고 해서 아침부터 도라지무침, 시금치나물, 오이무침, 뼈해장국을 준비하고 점심엔 가락시장에서 동생이 좋아하는 회도 떠왔습니다.

신랑과 남동생은 가볍게 맥주 몇 캔을 마시며 그간의 이야기를 하고 저는 저대로 동생에게 궁금한 이야기를 물었습니다. 결혼을 안 한 동생은 나이가 있어도 항상 물가의 어린애처럼 걱정이 됩니다. 매번 만나면 어릴 적 이야기를 하곤 하는데도 아직도 서로가 다른 기억을 간직한 것들이 있다는 게 신기합니다.

겨울밤은 길어서 함께 묵은 이야기를 하기 좋은 것 같아요.

붉은 동백꽃 한 송이 탁자에 놓으면 주위가 환해져서 늦게까지 이야기하기 좋을 것 같습니다.


아직 봄은 준비 중이고 겨울밤은 길고 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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