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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혜연 Feb 14. 2023

그림의 언어

그림의 언어

때로 말은

듣는 게 아니라

보는 데  있다


들어서 아는 것보다

보아서 알아지는 말들이

훨씬 많다


거칠고 마른 

가뭄 든 날 논두렁 같은 

노모의 손과

웅크리고 돌아앉은

작디작은 등


우리는 때로

들어서 알 수 있는 것보다

보아서 이해할 수 있는 것들이

더 많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잘 듣는다는 것은

깊이

더 깊이

바라본다는 것이다



어제 신랑과 저녁을 먹으며 어린이집에서 마스크를 계속 쓰고 있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실내에서 마스크를 벗어도 된다고 발표가 된 지 3주가 지나가지만 돌아다니다 보면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마스크를 끼고 있다. 

두 똥그리들이 다니는 어린이집도 자체적으로 계속 마스크를 착용하기로 했다고 한다. 


한편으로 백 명 가까이 다니는 어린이집이니 위생상 그럴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는 표정언어를 읽고 파악해야 할 나이에 그런 기회가 너무 줄어서 안타깝다는 생각도 한다. 사람의 언어는 듣는 것보다 몸짓언어에 더 많은 의미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런데 마스크를 쓰면 상대의 표정이나 숨은 뜻을 읽어낼 수가 없다. 

눈만 웃는지 그 사람이 진짜 웃는지도 알 수 없고 화를 내거나 속상한 표정, 실망한 표정을 읽어내기도 어렵다. 본다고 다 아는 것도 아니지만 볼 수 없는 상황 속에서는 그마저도 알아낼 수가 없다. 그러다보니 연령이 적을수록 표정언어를 이해할 수 있는 폭이 줄어드는 것 같다. 몇 해 전부터 읽어도 뜻을 알지 못하는 문해력이 문제가 되는 것처럼 우리 똥그리 연령대의 아이들의 몸짓언어 이해도도 나중엔 사회적 문제가 되지 않을까 우려스럽기도 하다. 

아이들의 면역력이 몸으로 생기는 것도 있겠지만 표정을 읽고 그 사람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아는 타인을 이해하는 마음력도 몸의 면역력에 어느 정도 영향이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이제 숨겨진 표정 속에서 우리의 감정을 서로가 한 번쯤은 더 읽어줄 수 있는 날들이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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