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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혜연 Feb 17. 2023

목련이 피는 밤

목련이 피는 밤



누구의 밤을

밝히기 위함인가


달 없는 어두운 도시 한편

여린 촛불을 켜고

아직은 싸늘한 겨울의 그림자가

골목을 지켜서 있는

차가운 담벼락에 기대

목련이 피고 있다


조금 이른

얇은 옷을 여미고

늦추위에 놀란 듯 웅크린 걸음을

위도 없이

아래로 아래로

서둘러 걸어가다가

불현듯 머리 위에 빛이 보이면

목련이 피었기 때문이리라


어느 누구는

잠 못 드는 밤

꿈속을 거닐지 못하는 어둠 속에서

창가에 어리는

따스운 빛이 보인다면

어김없이

목련이 피었기 때문이리라


봄은 목련이 있어

따스해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오늘은 우리 첫째 어린이집에서 졸업식이 있었습니다.

저녁 6시부터 시작된 아이들의 공연.

뮤지컬 백설공주에서 우리 아들은 일곱 난쟁이 중 미남이었죠.

생애 첫 졸업식에서 하는 공연 준비는 어린이집에서 큰 행사였습니다.

준비하는 두 달여 기간 우리 식구는 매일 아침저녁으로 백설공주 대사를 다 외우고

"안녕, 난 미남이라고 해."라는 말을 귀에 피가 날지경으로 들었습니다.

엄마인 저는 이제 백설공주를 노래로 부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그렇게 외쳐대던 미남이가 졸업식 당일 사라져 버렸습니다.


굳은 어깨.

흔들리는 눈동자.

빵빵한 볼에 가득한 긴장감으로 끝끝내........

"안녕, 난 미남이야!!"라고 외치지 못하였습니다.

그저 일곱 난쟁이 중에 빨간 옷을 입은 똥그리가 로봇처럼 친구들과 섞여 무대를 걸어 다니고 있었습니다.

수많은 날들을 미남이로 살았던, 자신감 넘치게 엉덩이를 흔들어대던 그 미남이는 오늘 어디로 간 걸까요?

다행히 다른 난쟁이들과 백설공주, 왕비들의 열연으로 감동의 하모니가 됐던 어린이집 뮤지컬 백설공주는 미남이 실종사건과 더불어 무사히 끝났습니다.

꽃다발을 준비하고 선물을 준비하면서도 실감을 못했던 첫째의 졸업식은 함께 졸업공연을 보고 사진을 찍으면서 감동으로 다가왔습니다.


건강하게 잘 커줘서 고마워.

그동안 너무 예쁘게 잘 자라줘서 감사해.

매일 잠잘 때마다 하는 얘기지만 엄마, 아빠의 아들로 태어나줘서 너무 감사해.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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