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2학년 때 시작한 화장은 호박에 줄 그으면 예쁜 호박이 될 수 있다는 경험을 하게 해 주었다.
이후로 밖에 나가 누군가를 만나야 할 때가 되면 예쁘고 깔끔한 옷을 찾아입듯 화장을 했다.
이십 대 때 입술라인을 검은색으로 하고 두툼한 입술엔 알 수 없는 벽돌색을 칠하곤 했는데 지금 하라고 하면 미쳤냐고 할 그 화장술을 안 하고는 밖을 못 나갔다. 웃긴 건 유행이라 모두가 그렇게 하고 만났었다.
그래서 가끔 이십 대 때 사진을 보면 풋~하고 웃음이 난다.
그러다가 삼십 대 때는 지금처럼 칼라레인지와 속눈썹 붙이는 게 유행이었다.
칼라레인지 중에 눈동자가 크게 보이는 것이 있었는데 그걸 끼면 눈동자가 더 검고 커다랗게 돼서 신비한 느낌까지 주었던 것 같다. 그때쯤 안경 끼는 게 싫어서 라식을 알아볼 때였는데 압구정에서 유명한 안과에서 검사비 10만 원을 주고 검사를 했었다. 그런데 내 눈동자가 다른 사람보다 커서 시술을 하게 되면 빛 번짐 현상이 100% 있을 거라고 해서 포기했다.
이후로 결혼을 하고 아이들 키우면서 화장을 거의 못했었다.
전업주부로 있었으니 십 년 동안 화장은 특별한 행사가 되었었다.
당연히 색조화장이나 다른 것들이 오 년씩 넘는 것들이 많았다가 요즘 전시회나 사람들 만날 일이 생기면서 화장품도 하나씩 다시 사고 있다.
다시 진지하게 화장을 하게 됐을 때는 설레더니 요즘은 그냥 맨얼굴에도 해사하게 예쁜 사람들이 부럽다.
나도 누군가처럼 "세수만 하고 나왔어요."라고 말해도 얼굴에서 광채가 나는 피부를 갖고 싶다.
아무것도 안 발랐다는데 풀매(풀 메이크업)를 한 사람처럼 완벽히 정돈된 얼굴을 가진 사람을 보면 존경스럽다. 진짜 그런 사람들이 있긴 있는 걸까?
가끔 얼굴만 씻어도 빛이 나는 중고등 학생들이 화장을 하고 다니면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조금만 지나면 화장을 안 하면 얼굴을 못 들고 다니는 나이가 돼버리는데...
어쩌면 오십의 화장은 일종의 예의인 것도 같다.
지나온 시간을 빛내줄 정돈된 아름다움을 선사해 주는 화장.
하지만 아무리 완벽한 화장도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표정을 포장해 줄 순 없을 것이다.
상대를 보고 눈을 맞춘 후 환하게 미소 짓는 얼굴은 어떤 메이크업보다 강력하다.
역시 사람은 웃을 때 가장 아름답다.
내가 화장으로 완벽해질 수는 없으니 예뻐지려면 자기 전에 거울을 보고 환하게 웃는 연습을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