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풍

by 이혜연
소풍

무더운 날씨가

지붕을 데우고

공기를 꽉 조일 때


장막을 뚫고 쏟아지는

예고 없는 소나기는

마음을 들뜨게 한다


들어가 본 적 없는

처마밑


급하게 서두른

서툰 사람들의

어색한 소풍


비가 그치면 흩어질

짧은 인연들이지만

이 생애 어느 날

불현듯

우린 만났었다



갑작스레 아이의 하교가 50분이나 빨라졌다.

서둘러 나가려는데 소나기가 내려서 우산을 챙겼다.

괜스레 예전 구닥다리 노래가 흥얼거려진다.

"빗방울 떨어지는 그 거리에 서서

그대 숨소리 살아있는 듯 느껴지면~"


아침엔 둘째 어린이집에서 그림책으로 하브루타수업을 했다.

아이들에게 책만 읽어주면 되는 거였지만 수업 시간에 퀴즈도 맞추고 수수께끼도 하면서 책의 내용을 몸으로 익히게 했다.

7살 초롱초롱한 눈망울들이 한꺼번에 집중을 해서 나를 쳐다보는 모양이 여간 귀여운 게 아니다.

덕분에 우리 둘째가 얼굴에 함박웃음이 한가득 피어올랐다.


정해진 일상에 조금의 변화만 생겨도 우리는 그 일에 대해 특별하게 인식하고 실제보다 더 크게 느끼곤 한다.

예정에 없던 비도, 오래간만에 조무래기들과의 만남도 내겐 소풍 같은 설렘을 안겨줬다.

갑작스러운 소낙비로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지 못한 첫째는 근처 도서관에서 메시와 손흥민 책을 만나게 됐다.

가끔 이렇게 생각지도 않은 사건들은 우리의 삶은 더 풍성하게 만들어주는 효과가 있는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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