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 긴 비

by 이혜연
길고 긴 비

잠결에

쏟아지는 빗소리


뿌리 없는 것들이

부유하며 떠나간다


모든 쓸려가는 것들 중에

내게 남겨져야 할 것은

무엇일까



하나님은 노아의 방주 이후에 다시는 물로 세상을 휩쓸지 않을 거라 약속하셨다고 해요.

잠결에도 어젯밤, 빗소리가 거대하게 들렸습니다.

덕분에 시원했고 꿈결에도 미처 치우지 못해 하수구를 막을 수 있는 물건이 있었는지 걱정도 해봅니다.

평소에는 눈에도 띄지 않는 일들이 가끔 큰 문제를 일으키기도 합니다.

작년 갑자기 쏟아진 물폭탄에 거리의 쓰레기와 미처 치우지 못한 나뭇잎들이 온 동네를 물에 잠기게 만들었던 사건도 아직 기억에 있습니다.

내 게으름과 나태, 부정적인 생각과 시기, 질투가 하수구를 막지 못하도록 오늘도 깊이 침잠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가벼운 것들, 속이 빈 채로 매달려있는 까투리들을 길고 긴 비에 떨궈냅니다. 가볍고 산뜻하게 주어진 모든 것들에 감사함으로 그 자리를 채워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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