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명환 씨는 죽음문턱까지 간 교통사고 이후로 생을 높은 곳에서 조망해 보면 고통과 기쁨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고 합니다.
20대 때 저도 이런저런 일로 정말 힘든 시기였습니다.
외부적인 일들보다 먼저 마음이 무너지던 때였습니다. 문제를 하나 겨우 풀면 다음 산이 바로 따라오고 산을 넘어 한숨 돌리고 싶은데 더 큰 산이 밀려들던 때였습니다. 힘들어 죽고 싶다는 생각도 했었습니다. 없는 집은 새는 구멍이 한두 가지가 아님을 몸소 체험하던 시기였습니다. 누가 아프거나 사고가 나고 이혼을 하거나 분쟁이 발생하며 막아야 할 경제적 구멍도 숭숭 시도 때도 없이 생깁니다. 일찍 가정을 꾸린 형제들의 도움을 바라기도 어려운 상황이니 그 책임이 모두 저에게 있었습니다. 어쩌면 그렇게 시험을 하는지 끝도 없이 절망에 빠지게 하던 날들이었습니다. 그렇게 힘들던 때 '이런 삶이라서 힘드니? 넌 어떤 삶을 살고 싶니?'라고 묻는 것처럼 강도가 들었습니다. 가로등 불빛에 커다랗고 시커먼 사람의 실루엣과 번쩍이며 살기를 발하는 무기를 본 후 삶의 끝은 이렇게 느닷없이 오는구나를 느꼈습니다.
다행히 극적으로 살아나고 한 동안 불면증과 우울증을 겪으면서 우는 것도 아니고 체념한 것도 아닌 상태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어느 맑은 날, 거리를 걷다가 문득 길거리를 스쳐가는 모든 낯선 타인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들도 나와 같겠구나. 어떤 이유로든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살아가고 있겠구나라는 생각에 길 한복판에서 대성통곡을 해버렸습니다. '네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는 말은 우리에게 벌을 주려고 하는 말이 아님을 알게 된 순간이었습니다. 모든 걸 나에서부터 시작하면 문제의 실마리를 찾을 힘이 생기고 나아갈 용기도 나옵니다. 그렇게 슬픔의 끝자락을 터주니 봇물 터지듯 아픔이 사라지면서 이 생에 온 것에 대해 다른 시선을 갖게 되었습니다.
오늘을 살자.
항상 오늘 더 행복하자.
해보고 싶은 게 있다면 오늘 하자.
그 이후로도 꾸준히 예전과 같은 시련이 있었지만 더 이상 그것이 고통으로만 다가오진 않았습니다. 불운이라는 생각도 없었습니다. 내가 떠안고 있던 모든 문제들은 결국 내가 선택한 것들이라는 생각을 가지니 불평도 없어지고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지 차분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결국은 나를 진정으로 마주하게 된 그 순간이 터닝포인트가 돼준 것입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이제는 다시 새로운 50년을 꿈꾸며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힘들 때도 있지만 기대감이 더 많습니다. 부족하기에 채워갈 일들을 꿈꿉니다. 비가 오면 해가 나고 바람이 불면 잔가지는 부러지고 나무는 더 큰 성장동력을 얻습니다. 세상은 끊임없이 자신의 성장을 위해 변화하고 다시 태어납니다. 우리 모두의 오늘도 그렇습니다. 오늘 하지 못하는 일을 내일 한다는 말은 자기기만이며 슬픈 자화상을 마주할 힘이 아직 내게 부족한 탓일 수도 있음을 항상 인지하며 살아갑니다.
마치 내일이 없는 것처럼 오늘 최대치의 행복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오늘은 아이들과 아차산 숲 속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둘레길을 걷다가 장맛비로 불어난 계곡에 가서 가재를 잡았습니다. 서울 한 복판, 사람 많은 계곡에 바위를 들추면 작은 가재들이 살아갑니다. 정말 산다는 것은 매일이 기적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순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