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랑은 결혼 전에 녹차만 마시는 사람이었다. 음료수도 안 먹고 커피는 지금도 잘 마시지 않는다. 유일한 기호음식으로 제일 좋아하던 게 녹차였다. 그런데 결혼을 하고 얼마 안 있다가 좋아하는 녹차를 끊겠다고 말을 했다. 왜? 커피를 좋아하는 나는 녹차를 좋아하는 그에게 눈치를 주거나 투박을 해본 적이 없다. 개인적으로 우린 함께지만 함께이면서 동시에 개별적으로도 행복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해서 그 사람의 취미나 생각을 굳이 고치려 하진 않는다. 물론 협의점을 찾을 부분은 많지만 기호식품까지 간섭하지는 말자는 주의였다. 그런 나였기에 신랑의 녹차를 끊겠다는 선언에 대한 이유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갑자기 왜 그런 결정을 했는데요?"
신랑의 말인즉 자기는 녹차가 너무 맛있단다. 그런데 단점이 화장실을 자주 가게 되더라는 것이다. 개발자에게 집중은 능력치를 위한 굉장히 중요한 소양이다. 그런 점에서 잦은 이탈은 몰입을 방해한다는 것이다. 일을 위해 그렇게 좋아하는 걸 끊는다고? 그게 자신의 삶에 합당한 일인가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신랑이 다음말을 이어갔다. 몰입을 못 하면 오늘 해야 할 자기 몫의 일을 퇴근시간까지 처리하지 못한다고 했다. 그럼 야근을 해야 하는데 그전에는 결혼을 안 했고 저녁에 밥값도 아낄 겸 야근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가정이 있는 사람이 야근을 하는 건 좋지 못한 것 같다며 자신은 녹차를 끊고 제 시간 안에 일을 처리하고 싶다고 했다.
그 여자, 밥순이가 되다
개발자를 주위에 둔 사람들은 알 것이다. 그들이 얼마나, 어떤 이유에서든 야근을 밥먹듯이 많이 하는지. 그런데 신랑은 결혼 후 자신의 일을 처리 못해서 야근을 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그래서 주위사람들의 평가도 빈틈없는 사람으로 인정받고 있는 편이다. 그 남자는 가정을 이룬 자신의 결정에 최선을 다해 몰입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나도 덩달아 매일 저녁 새로운 밥과 한 가지 이상의 요리를 준비할 수밖에 없다. 녹차를 끊은 그 사람의 마음과 인생에 대한 태도를 리스펙(?) 하기 때문에. 하지만 어쩌면 철두철미한 그 남자의 큰 그림에 자발적 노예근성으로 밥순이가 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가끔 한 번씩 스멀스멀 올라오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