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들의 자리

by 이혜연
모든 것들의 자리



엄마는 그리움 음식 제조사


엄마라는 말에는 그리움, 따뜻함, 안식처, 포근함과 깊은 슬픔, 안쓰러움이란 말이 동시다발로 떠오르곤 한다.

그리고, 그런 느낌들이 처음에는 촉각으로 느껴지다가 마지막엔 미각으로 끝나곤 한다.

엄마의 살냄새, 엄마의 웃음에서 느껴지는 포근함을 느끼다 보면 나를 위해 밥상을 차리시던 엄마의 음식에 대한 그리움이 더 짙어진다. 다시 한번만 그때 비 오는 날의 술빵을 먹어보고 싶었다가 막 담은 파김치에 참깨 잔뜩 묻혀 돌돌 말아 입에 넣어주시던 그 알싸하고 매콤하면서 살아있다는 느낌을 생생히 받는 맛이 떠오르기도 한다. 거기다 계절마다, 아침저녁마다 떠오르는 엄마의 음식이 다르다. 가을엔 들깨를 갈아 만든 수제비며 토란탕이 생각나고 겨울엔 큰 가마솥 가득 끓여내던 팥죽과 호박식혜 그리고 살얼음 동동 띄워낸 동치미가 생각난다. 봄엔 이제 막 돋아난 냉이를 넣고 끓인 고소한 된장국, 여름엔 고추장으로만 비빈 비빔국수가 생각난다. 그래서 엄마는 그리운 음식의 어떤 부분이기도 하다. 그런 생각으로 우리 아이들에게도 그리운 음식들을 하나씩 만들어주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며칠 전 예천 농민들이 축제에 오셔서 감말랭이며 참기름, 상추와 대추 그리고 통들깨 등을 판매하셨다. 마트에서는 보기 힘든 통들깨였기에 얼른 두 봉지를 사서 두었다가 오늘 들깨수제비를 했다. 우리밀로 반죽해 놓은 반죽을 냉장고에 하루 숙성해 두었다가 오늘 통들깨를 믹서기에 갈아 채로 걸러 멸치육수를 우려 만들었다. 통들깨 간 것을 고운 체에 물을 붓고 들깻물을 만들어 멸치육수와 합해서 간을 했다. 보통 정성이 들어가는 게 아니어서 맛이 없으면 어쩌나 걱정이 되었다. 다행히 고소하고 맛있다며 아이들과 신랑이 너무 좋아했다. 덕분에 용기를 얻어 세입자분들께 전화를 하니 한 분만 집에 계셔서 함께 나눠먹으니 더 정겹고 따뜻한 음식이 되었다. 엄마가 해주셨던 가을 들깨 수제비가 나중에 우리 아이들에게도 나처럼 그리운 음식으로 자리 잡을지는 모르겠지만 힘들 때,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어질 때 우리가 함께 했던 행복한 가을 저녁을 기억해 주었으면 좋겠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흐린 가을, 오전 열 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