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 마리 용이 여의주를 가지고 놀다

by 이혜연
아홉 마리 용이 여의주를 가지고 놀다


변화무쌍한 세상 한가운데 떠도는 물결 위에 자리를 펴고 앉아서인지 제주도의 어제와 오늘이 너무 다릅니다. 미리 예약해 둔 거문오름을 올라갈 즈음엔 태풍처럼 비바람이 몰아쳤습니다. 유네스코에 등재된 곳이라 해설사와 동반등반을 원칙으로 하고 있어서 아이들과 해설사 선생님과 함께 비바람을 헤치며 오름을 올라갔습니다. 비옷을 입었어도 머리와 발은 비에 젖어 축축해지고 정상으로 갈수록 바람과 안개가 휘감아 와서 나무데크가 심하게 미끄러웠습니다. 아이들이 불평할 줄 알았는데 신난다고 잘 올라가는 모습이 대견합니다. 여행을 좋아했던 엄마의 여행스타일이 생고생스타일이라 주로 걷고 오르고 체험하는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그렇게 비 오는 날에 오르게 된 거문오름은 아홉 마리의 용이 여의주를 가지고 놀았다는 신령한 기운이 서려있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분화구 내부에 있는 숲이 우거져 검은빛을 띠고 있고 비바람과 함께 운무가 끼어있는 모습이 신비롭게 보이기도 했습니다. 비가 조금만 왔어도 3시간 30분 코스를 돌고 싶었는데 둘째의 비옷이 제대로 기능을 안 해 옷이 축축해진 탓에 1 코스만 돌고 내려와야 해서 조금 아쉬운 마음이었지만 비 오는 산행은 나중에도 기억에 남을 만큼 재밌었습니다. 급하게 떠난 제주도 길은 3박 4일 일정으로는 많이 아쉬웠습니다. 밤늦게 돌아오는 비행기였지만 두 아이는 다음엔 더 길게 제주도에 머물고 싶다는 말을 여러 번 하며 아쉬움을 이야기했습니다. 엄마인 저도 아이들이 어렸을 때 자연에서 키우고 싶은 마음이 더 커진 여행길이었습니다. 염려해 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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