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널 모른다

by 이혜연
나는 널 모른다


첫눈이 오는 날, 아이러니하게도 봄을 꿈꿨다


여독이 풀리지 않은 아침. 졸업여행을 가는 둘째 도시락을 챙기고 일어나지 못하는 첫째를 깨워 등교를 시킨 후 쓰러지듯 다시 잠들었다. 미술심리상담 시간에 늦은 걸 알고 부랴부랴 일어나 뛰어가니 벌써 30분 지각. 그 사이 눈이 왔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나는 첫눈을 참 좋아한다.

아니 그냥 하늘에서 떨어지는 모든 것들을 좋아하지만 그중에서 눈을 특히 좋아한다.

모세가 무리를 이끌고 광야를 지나가야 하는 힘든 여정에서 내려주신 맛나가 내겐 하늘에서 내리는 눈 같은 이미지가 있다. 모든 것들을 감싸며 내리고 내려 비어있는 것들을 채우고 더러운 것들을 덮어주는 하얀 눈. 그런데 오늘은 그 눈소식에서 봄을 기다렸다.

신랑은 돈이 되지 않는 그림을 그리는 것을 아직도 이해하지 못한다. 어제도 늦게 집에 와서 짐을 풀고 빨래를 돌리고 12시가 되기 전에 그림과 글을 쓰려고 서둘렀다. 옆에서 보기에 하루 한 장의 글그림을 그렇게 애쓰며 하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어느 정도 이해가 간다. 더군다나 돈이 전혀 안 되는 일이니 더 시간낭비이고 이기적인 모습으로 비치는 것 같은 생각도 든다. 하지만 누군가의 아내, 두 아이의 엄마이기 이전에 무언가를 이루고 싶은 한 사람으로서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고 싶어 하는 마음은 아직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 아마 가장으로서의 무게가 혼자만의 꿈을 좇는 내 행동을 더 이해하기 어렵게 만드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다. 미래에 대해, 내일에 대해 끊임없이 대비하고 걱정하는 남자와 지금을 살고 싶은 여자의 대화는 접점을 찾기 어려울 때가 있다. 오늘의 내 그림과 꿈이 내일 어떤 가치가 있을 것 같냐고 성공의 확률을 요구하는 질문에는 무척 난감할 때가 많다. 어찌 지금을 사는 내게 내일을 묻는 것일까. 눈이 세상에 꼭 필요하냐고 묻는다면, 세상엔 눈 없이도 살 수 있는 나라도 많다는 반박은 나로서는 어찌해 볼 수 없는 질문이다. 다만 나는 내가 살아가는 곳에 때가 되면 눈이 내려주는 것이 좋다. 하얗게, 하얗게 어디든 골고루 내려 마른 가지를 덮고 추워진 대지를 감싸주는 그런 눈이 내린 후 겨울엔 보이지 않던 땅속에서 뿌리만 살아남아 있던 튤립 뿌리에 수분을 제공해 줄 것이다. 그런 후 따뜻해진 햇살에 뿌리에서 긴 꽃대를 내어 세상을 향해 노랗게 피어날 것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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