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과 떠난 첫 해외여행지였던 후쿠오카는 내겐 시간이 멈춘듯한 느낌을 많이 주는 곳이었다. 26년 전 부산을 출발해서 하타카 항으로 입국하는 배를 타고 처음 후쿠오카를 방문했던 때와 지금의 후쿠오카는 많이 변하지 않은 느낌이었다. 26년 전 일본은 우리보다 월등히 앞서가던 곳이었다. 그때는 렉서스의 신화를 필두로 세계를 이끌 차세대 주자로 자주 일본이 거론되었을 때였다. 그때 인상 깊었던 일본의 모습은 거주지나 도로에서 웬만하면 경적을 울리지 않는 모습이었다. 모든 행동을 조심스럽게 하는 것이 몸에 배어있어 덩달아 여행객인 나도 옷매무새나 숨 쉬는 소리까지 옆사람에게 피해를 주진 않는지 돌아보곤 했었다. 그리고 작은 집들. 정말 저 안에 가족 구성원이 다 함께 살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집이 작았었다. 대문도 작고 창문도 조그마해서 놀랐었던 기억이 아직도 남아있다. 이번 후쿠오카에서 아침마다 숙소 주변을 산책 나갔었는데 그때도 작은 옛날 집들이 많이 보였었다. 빗살무늬 나무 문과 여닫이 현관문이 세월의 흔적을 가득 머금은 채 앙다문 입술처럼 닫혀있었다. 저녁이 되면 그 조그만 창문으로 노란 불빛이 새어 나오는 걸 보면 사람이 살고 있다는 증거인데 언제나 사람이 사는 마을처럼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조심스러운 침묵이 짙게 깔려있었다. 26년 전엔 일본을 여행했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전제품 코너에서 전기밥솥을 사기 위해 고민을 했었고 해외여행 기념품으로 손톱깎이며 아기자기한 손거울 등을 사느라 정신없었었다. 하지만 이번 일본여행에서 돌아오는 여행객들의 기념품 중엔 후쿠우카지역의 대표적인 과자들만 잔뜩 들어있을 뿐 전기밥솥을 사 온다든지 손톱깎이를 세트별로 사 오는 경우는 거의 보지 못했다. 26년이란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나라 가전제품의 디자인이나 성능이 일본의 것보다 뒤지지 않게 되었고 손톱깎이의 디자인이나 기능도 여느 나라에 비해 국산이 기능적으로 디자인적으로도 떨어지지 않기 때문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일본의 화려했던 신화들은 어디로 갔을까. 여전히 그대로인 후쿠오카. 그래서 좋았고 그렇기 때문에 불편했던 점도 많았었던 여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