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기다리며

by 이혜연
봄을 기다리며


어제 함박눈이 내렸는데도 바람 끝에는 봄이 묻어있습니다. 흙이 말랑말랑 해지는 이맘때쯤 어른들은 겨우내 묵혀두었던 두엄을 논 밭에 뿌려두곤 했습니다. 그렇게 묵혀두었다가 흙을 뒤집어엎고 땅을 고르게 골라 봄에 씨앗들을 더 풍성하게 키워내셨던 게 기억이 납니다. 또 하나, 떡잎들이 흙을 뚫고 올라올 때 씨앗 껍질을 모자처럼 쓰고 올라오는데 그걸 떨쳐내는데 또 며칠의 시간이 걸립니다. 어느 날인가 제가 그 모습이 안쓰러워 모자처럼 돼있던 씨앗 껍질들을 손으로 다 벗겨내 주니 엄마가 급하게 말리더라고요. 싹이 난 이상 씨앗 껍질도 제 스스로 벗어버려야 한다고요. 그래야 잘 자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에 태어난 그 조그만 떡잎마저도 자신의 무게를 견디며 스스로 그물에서 빠져나오는 방법을 깨우치며 살아간다는 걸 어느 봄날에 알게 되었습니다. 그 일이 어려운 일이 닥치거나 다른 사람의 손을 빌려서 해결하고 싶을 때마다 생각이 났습니다. 그래서 나는 지금 내 머리의 씨앗 껍질을 스스로 벗겨내고 있는 것일 뿐이라는 생각으로 혼자 해보려고 노력했던 것 같습니다.

사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손이 많이 떨렸었습니다. 찻잔을 들고 있을 때도 연필을 잡고 있을 때도 달달달.. 하는 느낌이 들 정도로 수전증이 있었죠. 객관적으로는 불편할 것 같지만 워낙 일상이 되다 보니 잊어버리고 사는데 가끔 누군가 한 번씩 "왜 그렇게 손을 떨어요?"라고 물으면 새삼 '아! 내가 손을 떠는구나.'하고 인지할 뿐입니다. 어떤 사람은 정밀검사를 권하기도 하고 걱정스럽게 바라보기도 하지만 워낙 어렸을 때부터 그래서 저는 별 고민을 안 합니다. 그래서 그림을 그릴 때도 손이 떨리면 다른 손으로 잡고 그립니다. 이 수전증은 저에게 하나의 껍질일 뿐이지만 생각에 따라 장애물이 되기도 하고 하나의 현상일 뿐이기도 하기에 저는 별로 개의치 않으며 살아갑니다. 그렇게 하루 한 장의 그림이 이제 703일째가 되었습니다.

한 해가 어떻게 지나갔나 모르게 시간이 흐르더니 한 달은 우습게 지나가 버렸습니다. 연휴가 끝나면 봄은 더 성큼 다가오겠죠. 삶이란 밭에 무엇을 심기 전에 땅을 다독이고 비옥하게 거름을 주는 시기가 왔습니다. 마음밭을 새롭게 갈아 업고 좋은 생각과 긍정적인 말들을 새겨보는 날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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