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는 봄꽃이 활짝 피고 윗지방 어디는 눈꽃이 만발해서 좁디좁은 우리나라도 꽤 넓은 곳이라는 생각을 갖게 하는 요즘입니다. 하지만 우리 땅 허리 중간쯤에 있는 서울은 따뜻한 비가 내리는 주말입니다. 오전 내내 희뿌였던 하늘이 점점 무거워지더니 보록보록 빗방울이 되어 땅을 깨우고 있습니다. 땅밑으로 보금자리를 내어 겨울을 견디던 개구리며 작은 씨앗들이 촉수를 뻗어 봄 내음을 찾아내겠지요. 겨울도 아니고 봄도 아닌 지금, 마음은 따뜻한 봄볕을 갈망하다 설국의 나라를 다시 한번 보고 싶은 아쉬운 미련이 남아 갈팡질팡하는 날들입니다. 나이가 들수록 계절에 둔감해지고 날씨에는 민감해집니다. 시간이 빠르게 흘러가버리니 그 계절에 무슨 일을 했는지 기억이 흐릿해집니다. 반면에 비가 오려는 날씨에는 몸이 먼저 반응하고 마음이 저 밑으로 가라앉아 평상시에는 묻힌 옛이야기를 들춰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끝에 옛맛이 떠오르고 돌아가신 엄마가 웃으며 서 계십니다. 어린 제가 코 찔찔 흘리고 눈을 반짝반짝 빛내면 젊디 젊었던 우리 엄마는 가마솥에 쟁반을 얹어 구수한 술 빵의 쪄주셨습니다. 그걸 투박한 부엌칼로 잘라주시면 추적추적 내리는 빗소리, 마당을 툭툭 치며 몰아세우던 빗방울들을 보며 마루에 앉아 호호 불어가며 먹었었지요.
막걸리를 주전자로 받아오던 시절, 빗속에서 몸이 젖는 것보다 주전자 주둥이에 물이 들어갈까 두려워 바람처럼 달렸던 날들. 오늘은 잊혀버린 옛날 고샅을 속절없이 마음속으로 걸어 들어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