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허리에 내리는 햇살

by 이혜연
등허리에 내리는 햇살

해는 항상 등허리를 타고 내려와

그림자를 숨기듯

스산한 마음을 단도리하기에 바빴다


넓디넓은 평야

구석진 산그늘 밑

이제 막 깨어난 땅 위로

벌써 늙어버린 꽃이

구부정하게 새 땅을 내다본다


어제도 보았지, 저 먼 곳을

가보고 싶어도 닿지 않은 저곳을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열심히 꿈꾸었었지


오늘 피어난대도

이미 아는 세상에 새로울 것 무에 있겠냐마는

오늘은 햇살이 좋아서

등짝이 시리지 않아서

행복하구나



작년 봄에 시어머니 따라 기장에 가서 싱싱한 멸치를 사 온 적이 있다.

어머님은 젓갈 담으시는 걸 일 년 행사 중 큰 행사로 아셔서 한 번씩 부산에 내려갈 때 함께 기장에서 멸치를 사 오곤 했었는데 작년에 작은 한 귀퉁이를 주시며 직접 젓갈을 담아보라고 하셨다. 매실장아찌는 그렇다 해도 젓갈을 담아본 적이 없어서 신랑에게 일을 맡겼었다. 그러다 어제 신랑이 젓갈을 내린다고 해서 둘이 함께 면포로 거르다가 이건 아니다 싶어 고운 체로 둘이 젓갈을 내렸다. 도와줄 누군가가 없지만 웬만한 일은 꼭 신랑이 도와주니 젓갈 내리는 것도 할만했다. 재작년 매실장아찌를 담을 때도 씻어주고 일일이 꼭지 따는 것을 도와줘서 장아찌 담는 걸 수월하게 한 적이 있다. 이번 멸치젓도 신랑의 도움으로 무사히 수제 젓갈을 먹을 수 있어 벌써부터 행복하다. 외식도 별로 안 좋아하고 햄버거나 다른 인스턴트도 별로 안 좋아하는 할머니 입맛인 나에게는 수제 젓갈, 수제 장아찌가 천군만마보다 더 든든하다.


어렸을 적 우리 마을에는 유독 허리가 굽은 할머니들이 많이 사셨었다. 지금은 60대여도 아가씨처럼 고운 분들이 많은데 예전엔 그렇지 못했다. 무릎이 아프거나 허리가 굽거나 지팡이를 짚고 다니는 분이 더 많았던 것 같다. 그분들은 무거운 짐을 들 때도 신랑들이 도와주거나 대신 들어준 적이 별로 없었다. 어릴 적 시골에서는 아내를 위한다던지 나란히 걷는 것 자체도 남세스럽다며 멀찍이 떨어 걸으셨다. 그래서 그분들 중 많은 분들이 옆자리에 묏자리 쓰는 것도 징그럽다고 죽어서도 수발들어야 하냐며 자기가 죽으면 멀리 떨어뜨려놓고 묘를 쓰라는 분도 계셨었다. 그렇게 돌아가신 분들 묘 위로 따스한 봄날 가장 먼저 피는 꽃이 할미꽃이다. 보라색 꽃이 따스해진 햇볕에 가만히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는 모습이 안쓰러우면서 평안해 보인다. 돌아가신 후에야 이 생의 짐을 벗고 따스한 봄 햇살을 즐기며 망중한을 보내던 옛 할매들은 가고 이제 떳떳하게 안방을 차지한 할머니들의 세상이 왔다.

산수유도 피고 개나라도 벌써 담장을 넘어 앙증맞게 피었다. 봄 햇살 맞으며 오늘도 행복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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