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나는 자주 냇가로 빨래를 하러 갔다. 그땐 손이 여무는 8살 정도만 돼도 엄마를 따라다니며 빨래며 밭일에서 잡심부름을 했었다. 학교를 다니면서부터는 2킬로가 넘는 비포장길을 함께 걸어 다니던 같은 동네 친구들끼리 어느 빨래터에서 만나 함께 빨래하자는 이야기를 하며 걸어왔었다. 그리고 우리는 각자의 집에 있는 빨래를 들고 같은 개울가에 모여 빨래를 했었다. 더러워진 옷을 흐르는 냇가에 가져가 방망이로 탕탕 때려 흘러가는 물에 흔들어 빨다 보면 집에서 있었던 기분 나빴던 일, 서러웠던 일들이 희미한 얼룩만 남긴 채 지워져 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었다. 학교에서 있었던 일들도 빨래를 하며 이야기했고 생각보다 빨리 끝나는 날은 물놀이도 함께 하기도 했다. 그런 후 집에 와서 빨래를 마당 가운데 있는 빨래 줄에 걸고 집게로 단단히 고정한 후 간짓대를 곧추 세워 하늘 가까이 걸쳐두면 바람이 와서 한번, 따스한 햇살이 와서 또 한 번 축축이 늘어진 빨래를 감싸주고 갔다. 날 저물어 다시 거두어들일 때의 그 빳빳한 느낌, 아직도 미세하게 남은 따스한 감촉들이 너무 좋았었다. 무엇보다 바람과 햇살의 향기가 코끝에 은은히 스며들어 빨래를 개는 동안 어지러워졌던 감정들도 하나씩 정리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어릴 때 냇가에서 빨래했던 기억은 이제 웬만해선 다시 재현할 수 없을 것이다. 물길이 바뀌었고 시대가 변했으며 너무 빨리 세상은 과거를 밀쳐내 버렸다. 물론 그때 느꼈던 감정도 마찬가지이리라. 이제 나는 세탁기에 빨래를 돌리고 건조기의 뜨거운 빨래를 말린다. 덕분에 작아진 옷들이 나의 다이어트를 재촉하고 험한 일을 하는 것도 아닌데 옷에 구멍이 빨리 생기는 것 같기도 하다. 삶에서도 많아진 시간, 편해진 일상의 후유증들이 슬며시 스며드는 느낌도 든다.
나는 집안일에서 자유를 얻었으며 더 많은 시간을 갖게 되었다. 몸을 쓰지 않는 잉여의 시간에 그림을 그리고 자료를 찾고 정보를 얻는다. 아이들 교육에 관한 프로그램을 본다거나 책을 읽고 때로는 유튜브 강의를 듣는다. 하지만 어느 때는 쇼츠에 빠져 허우적대거나 할 일을 미뤄둔 채 친구와 수다삼매경에 빠지기도 한다. 많은 시간을 선물로 받았지만 그 시간 속에서 나의 감정을 깨끗이 비우는 행위를 하기는 쉽지 않다. 말하자면 아이쇼핑을 나갔다가 싸다고 쓸모도 없는 물건을 잔뜩 사 와서 내팽개쳐 놓은 상태의 방과 같다. 그런 물건들은 몇 번 입거나 쓰다가 방치하고 나중에는 걸리적거린다며 처박아두다가 버리게 된다. 깨끗이 빨아 다시 사용하고 싶은 물건들이 아닌 것이다. 햇볕에 말려 빳빳해진 감정으로 다시 갈아입었던 예전의 방식이 가끔 그립다. 옷장에서 옷을 꺼내 머리를 집어넣을 때 나던 그 따스한 햇살 냄새가 그립다.
느리더라도, 더 시간이 걸리더라도 그때의 그 햇살 속에 헝클어지고 더러워진 마음을 하늘 높이 걸고 바람이 한번, 따스한 해님이 한 번, 축축해지고 늘어진 나를 다시 세워주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