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쯤 남녘에서는 모내기 준비를 하느라 논에 물을 한껏 받아두고 땅이 무르도록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아침에 일어나 제법 많은 비가 내리는 걸보고 '농부들에겐 고마운 비겠구나'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저 역시 서울 변두리 작은 이랑하나 짓고 있으니 이 비를 통해 자라게 될 상추며 감자, 아욱, 열무들을 생각하며 비에게 감사하는 아침을 보냈습니다.
봄은 꽃이 피기에 좋은 계절이기도 하지만 씨앗을 심고 그것이 싹이 나길 기다릴 때도 아름다운 시간을 만들어줍니다. 두터운 땅을 뚫고 여리디 여린 떡잎을 거쳐 작은 잎을 낼 때쯤엔 여름의 풍성함을 고대하게 됩니다. 아주 작은 씨앗이 흙을 뚫고 싹을 낸다는 것은 그만큼의 고통을 이겨냈다는 말이 되겠지요.
레이 달리오의 원칙에서는 "고통은 당신이 해법을 찾아야 한다는 신호이자, 그 결과를 통해 발전할 수 있다는 신호이다."라고 말합니다. 흙으로 떨어져 자신의 무게보다 몇 배 더 무거운 압력을 견디고 싹을 틔워내는 씨앗들을 보면 얼마나 많은 인내를 가지고 믿음을 들어 올려 세상에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키는지 감탄이 절로 나옵니다.
하지만 가끔 사람들은 끊임없이 밀려오는 자기 후회나 불안을 견디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기도 합니다. 우리가 기다림의 끝에 열매가 분명 맺히리라는 스스로의 믿음을 가지고 기다리고 인내하지 못한다면 고통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지도 모릅니다. 몇 주 전에 내 손에 있던 깃털처럼 작은 상추 씨앗들도 자신보다 몇 배나 무거운 흙의 압력과 자기를 끌어내리는 중력을 이겨내고 하늘을 향해 스스로를 증명해 냈듯이 우리도 인생이라는, 운명이라는 무게를 떨치고 우뚝 설 수 있게 되길 기도합니다.